[줌 인] 은행계 여성 CEO 듀오 시대

4월1일자로 윌셔은행의 공식 행장으로 결정된 지난 25일 조앤 김 행장은 나라은행 민 김 행장에게 전화를 걸어 기쁨을 함께 나눴다.

같은 여성으로서, 그리고 내부발탁에 의한 행장 승진의 선례를 공유한 두 여성 행장들은 이제 한인은행계 후배들에게 좋은 선례를 남겨야 할 숙명을 함께 하는 동지이지만 영업과 경영 등 모든 분야에서 비교 대상이 될 수 밖에 없다. 경쟁을 벌여야 하는 라이벌 구도가 불가피해진 셈이다.

미주 지역 한인커뮤니티의 은행계에 바야흐로 여성CEO 듀오시대가 열렸다.

지난 2006년 나라은행이 당시 행장대행이던 민 김 전무를 한인은행가 사상 첫 여성행장으로 발탁한데 이어 지난 25일 윌셔은행이 조앤 김 행장을 낙점하면서 한인은행가에 거세게 불고 있는 여풍의 위력이 다시 한번 한인커뮤니티를 흔들었다.

이들은 한인은행에서 커리어를 시작, 모든 은행원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행장에 오르며 내부발탁 인재의 성공기를 써내려가야 하는 선구자격인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다.


▲ 나라은행 민 김 행장

ⓒ2008 Koreaheraldbiz.com

▶민 김 행장
은행 창구의 텔러에서 출발, 한인은행가 최초의 여성지점장이 되면서 이름을 알리더니 마침내 최초의 여성행장의 영예를 먼저 차지했다. 한국에서 중학교를 다니던 중 이민오게된 1.5세로서 USC에서 회계학을 전공했다.

“민 김 행장 옆에 서 있기가 민망하다”는 남성들이 있을 정도로 유난히 키가 크다. 성격조차 시원시원, 거침이 없다. 그래서 ‘여장부’라는 수식어도 종종 붙는다. 나라은행의 한 직원은 “업무에서는 적극적이고 추진력이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고 넓게 볼 줄 안다”라며 “직원들에게 방향설정을 잘 해주고, 은행이 차별화되는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자주 강조한다”라고 말했다.

은행장인 만큼 어깨에 힘을 주고 턱을 한껏 치켜들면서 고품격 치장을 할 법하지만 오래 전부터 몰고다니는 렉서스 ES를 탈 정도로 겉치레에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 편이다. 깔끔하고 화사한 정장차림일 때는 국물이 튈까봐 기피하게 마련인 우거지 갈비탕같은 메뉴를 고객을 상대하는 점심미팅에서도 선뜻 고를 정도로 수더분한 식성은 까다롭지 않을까 싶었던 초면 인상을 금세 씻어내는 친화력의 원천이 되고 있다.


▲ 윌셔은행 조앤 김 행장

ⓒ2008 Koreaheraldbiz.com

▶조앤 김 행장
고려대 영문과 73년도 입학 학번을 가졌다. 대학을 한국에서 마치고 미국에 건너왔지만 영어구사력은 1.5세인 민 김 행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분기 별 실적이 나올 때마나 갖는 투자자 대상 컨퍼런스콜에서는 아무래도 영어가 불편한 전임 민수봉 행장(72)을 대신해 직접 나설 정도였다.

1978년 가주외환은행에 론오피서로 입행한 이래 줄곧 대출 분야에 몸을 담고 한인커뮤니티를 휘젓고 다닌 대출영업분야의 베테랑으로 손꼽힌다. 일에 관한한 맺고 끊는 게 분명하고 늦은 밤까지 은행에 남아 업무를 볼 정도로 몰입하는 성격이다. 지난 1989년부터 쉬지않고 교회의 선데이스쿨에서 5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봉사의식도 돋보인다.

‘매순간 최선을 다하고, 항상 감사하며 살자’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민 김 행장이 술을 전혀 마시지 못하는 반면 조앤 김 행장은 남성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소주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다하지 않을 만큼 호방하고 대화 주제 또한 폭넓어 좌중을 주도한다.  

▶은행가의 기대
두 여성행장의 공통점은 적지 않지만 무엇보다 각자의 은행이 어려운 시기에 행장대행을 맡아 혼란스러울 수 있는 상황을 깔끔하게 정돈했다는 점은 가장 돋보인다. 보수적인 은행 이사들로서는 새내기 행원일 때부터 지켜봐온 여직원 출신을 행장으로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 분명하지만 이들은 오랜 경험과 영업 현장에서 갈고 닦은 리더십을 발휘하며 이사회의 신임을 얻어냈다.

한인은행들의 이사회는 행장 인선이 있을 때면 헤드헌터를 고용해 외부인사 영입에 열을 올리는게 일반적이었다. 그런 점에서 두 여성 행장의 내부 승진은 앞으로 한인 은행계의 인사시스템에서 여러가지 벤치마킹 사례로 삼게 될 전망이다.

한인 은행의 한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명망을 떨친 손성원 전 한미은행장도 기대에 못미친 게 사실 아닌가. 한인커뮤니티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오랜 현장경험과 로컬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점이 내부발탁 인재들의 연이은 행장 취임을 통해 증명되고 있는 셈”이라고 의미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두 여성 행장이 성공시대를 열어가는 배경에는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섬세함과 꼼꼼함도 한몫했다는 평이 많다. 나라은행이나 윌셔은행의 직원들은 한결같이 “업무적으로는 남자 상사 못지 않지만 직원들을 세심하게 챙겨주고 때로는 자상하게 조언을 해준다”라는 말을 하고 있다. 한 여성 은행원은 “은행이 뻣뻣한 관료같은 이미지가 아니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고객에게 꼼꼼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친절한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데는 여성이 남성보다 더 유리하다”라고 말했다.

“이러다 남자는 은행에서 설 곳이 없게 될지 모르겠다”라는 남성 은행원들의 농담은 여성행장 듀오시대를 주목하고 있다는 긴장된 신호나 다름없다.

염승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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