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3명 이상의 후보들이 출마해 격전이 예상됐던 제 29대 한인회장 선거가 스칼렛 엄 현 한인회이사장의 단독 출마로 사실상 차기 회장에 무투표 당선되면서 싱겁게 막을 내렸다.
올해 초부터 선물공세를 펼치며 한인회장의 꿈을 키웠던 배무한 전 봉제협회장이 사업상의 이유로 출마를 포기한 사실은 그만 두고라도 남문기 현 회장의 막판 재출마 포기의 반전 드라마는 한인사회에서 두고 두고 입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후보 등록 마감일 이틀 전까지만 해도 재임을 위해 출마할 것이라는 의지를 밝혔던 남 회장은 등록 마감일인 28일 스칼렛 엄 이사장의 눈물 어린 호소에 심정적으로 동요, 출마를 포기하고 양보의 미덕을 발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한편에서는 제 3의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움직임을 보였던 모 인사의 후보등록을 차단하기 위해 극적인 효과를 얻고자 스칼렛 엄 현 이사장의 단독 출마에 무게를 실어 주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재선임을 위해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이튿날 만난 엄 이사장의 눈물 어린 호소에 마음을 바꿨다면 그 이전까지의 수 많은 날들을 보내는 동안 다듬은 끝에 내놓았을 남회장의 재출마 결의가 불과 48시간 만에 어떻게 번복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게 없다면 재선임 출마의지 공개부터 번복, 그 사이에 있던 엄 이사장의 눈물까지 모든 일련의 과정이 짜고 친 고스톱판이나 다름없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선거관리위원회도 마찬가지다.’사전 준비 부족’이라는 희한한 직무태만 상황을 연출, 선거가 치러졌더라도 특정 후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전개될 수 밖에 없었다는 말이 나돌고 있다.
선관위는 LA 한인타운에 거주하는 상당수 한인들의 투표장소로 애용되던 서울국제공원내 체육관의 사용 불가능 여부를 최근에야 확인하고 부랴부랴 주류 정치인들에게 줄을 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2년전 28대 회장 선거당시 3개월여의 준비기간을 거치고도 당일 투표에 큰 혼선을 빚는 등 투표관리를 위한 전산시스템 문제가 크게 대두됐음에도 불구하고 선관위는 최근에야 이를 관리할 업체선정 작업에 나서는 등 한달여 밖에 남지 않은 준비기간에 선거를 치를 수 있을 지 의심스럽기만한 움직임을 보였다.
결국 처음부터 단독 후보의 무투표 당선을 염두에 둔 각본에 따라 선관위가 의도적으로 게으름을 피운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가 많다.
스칼렛 엄 이사장의 한인회장직에 대한 집념은 널리 알려져 있고, 또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다른 후보와 경쟁하는 게 두려워 단독출마를 위한 ‘작전’을 펼쳤다면 60만 한인들의 이익을 대변할 LA한인회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만한 경쟁력과 도전정신은 원천적으로 부족한 게 아닐까.
한인회장을 한인들의 직접투표로 뽑겠다는 경선제도를 도입한 것은 커뮤니티의 한인들이 아니고, 바로 한인회 자체였다.
한인회장이 누가 되든 워낙 관심이 없는 한인동포들의 눈길을 끌고자, 그래서 대표성을 얻고자 만들었던 경선제도 아니었던가.
경쟁을 통한 투표 결과가 불안스러워 시나리오를 짜고 모략을 했다면 차라리 예전처럼 한인회관 안에서 이사들끼리 의견을 나눠 회장을 고르면 될 일이다.
뭣하러 굳이 머리를 쥐어짜가면서 각본을 만드는 수고를 하면서 커뮤니티를 혼란스럽게 하는가 말이다. 아무래도 LA한인회 사람들은 사극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는 것같다.
이경준 기자 / 미주본사 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