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어버린 ‘아메리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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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 미국에 가면 무슨 일을 하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외 이주 노동자들의 오랜 꿈이었다.

그러나 경기침체 여파로 달러화의 가치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면서 이주 노동자들은 이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를 주저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일 이주 노동자들이 미국 대신 유럽과 호주 캐나다를 이주 노동 선호국으로 꼽고 있다면서 ‘달러 급락으로 무너진 아메리칸 드림’이란 제목을 뽑았다.

딜립 라사 세계은행 해외이주 담당 책임자는 “방글라데시와 네팔 필리핀 출신 이주자들은 화폐가치가 높은 나라에서 일하고 싶어한다”면서 “이 같은 경향은 특히 의사나 간호사, 정보기술(IT) 전문가 등 숙련기술자 집단에서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변화는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에 보내는 송금액 집계에서도 잘 드러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해외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에 보내는 송금액은 지난해 연말 기준 240억달러로 전년 대비 8% 늘었지만 미국행 이주자가 많은 멕시코와 일부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보내는 송금액이 별로 늘지 않았다.

또 중미와 안데스지역 국가는 4년 전만 해도 미국으로 이주한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보낸 송금액이 전체 송금액의 90%를 넘었으나 지금은 80%로 뚝 떨어졌다. 이는 에콰도르와 볼리비아 등 이 지역 출신 이주자들이 선호하는 나라가 미국에서 유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신문은 전했다.

마찬가지로 브라질 출신 이주자들도 이제는 미국보다 유럽과 캐나다를 더 일하고 싶은 나라로 꼽고 있다.

사회학자 수엘리 시퀘이라가 브라질 고베르나도르 지역 출신으로 해외이주 경험이 있는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28%는 다시 해외로 나가 돈을 벌고 싶지만 미국을 선택하지는 않겠다고 답했다.

이들이 미국 이주를 꺼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브라질에서는 불과 4년여 만에 자국 화폐인 레알화의 가치가 달러화 대비 배 가까이 올랐다. 열심히 일해서 고향에 있는 식구들에게 돈을 부쳐도 이미 그 돈의 가치는 4년 전에 비해 절반에 불과한 셈이다.

신문은 아메리칸 드림의 꿈을 안고 지난 2004년 말 멕시코를 거쳐 미국 보스턴으로 이주한 브라질 고베르나도르 출신의 한 건축노동자 사례를 소개했다.

44세의 다넬리는 그 해 목돈 1만달러를 소개비로 내고 미국으로 건너오는 데 성공했다. 다넬리의 주급은 500달러, 소개비를 마련하느라 진 빚을 갚는 데만 1년반이 걸렸지만 고향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높은 임금이었다. 한 달에 300~400달러씩을 고향집에 부치며 만족스런 생활을 해 온 그에게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해부터다.

레알화의 가치가 달러 대비 급등하면서 고향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고, 때마침 불어닥친 건축경기 불황으로 한 달에 700달러하는 월세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다넬리는 결국 빈털터리 신세로 고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보스턴 지역 저널리스트인 레이문도 산타나는 “(미국으로 오는) 이주자들이 많이 줄고 있다. 그들이 볼 때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춘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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