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통신기업 SK텔레콤이 미국 이동통신 시장 석권을 내걸고 의욕적으로 출범했던 현지법인 힐리오가 끝내 경쟁사에 매각되는 수순을 밟고 있다.힐리오는 버진 모바일USA에 흡수 합병되는 쪽으로 지난 2년간의 고난을 정리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즈가 지난 24일 힐리오의 매각 소식을 알리자 세계 이통통신 시장은 그 파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의 애널리스트들은 일단 더이상 밑빠진 독에 물 붓기식 투자를 하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힐리오의 모회사인 SK텔레콤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고 보고 있다.
▲전략적 제휴 아닌 매각 – 왜? 지난 5월 힐리오와 버진모바일USA가 제휴 협상을 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해도 가상이동망사업자(MVNO) 시장에서 고전하는 양측이 전략적인 파트너 형태를 모색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힐리오가 버진 모바일USA에 흡수되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전문가들은 미국내 이동통신 보급율이 80%를 넘고 있는 시장포화 상태에서 전반적인 경기침체의 여파로 AT&T, 버라이즌, 티모빌 등 선두권 업체들 조차 기존 가입고객을 지키는 데 급급하고 추가 고객 확보를 위해 월 99달러선의 무제한 요금제와 데이타서비스를 강화하고 있어 힐리오와 같은 MVNO의 입지는 갈 수록 좁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이번 흡수합병에 대해 열악해져 가는 시장 환경에서 효율과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 해야할 당연한 단계라고 긍정적인 평가다.
이달초 미국 내 2위 통신업체인 버라이즌의 올텔 인수에 이어 4위권 업체인 독일계 티모빌의 스프린트 인수 추진 역시 중복 사업 정리를 통한 비용 절감 등 악화된 시장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수순이었다. 지난 2005년부터 미국 시장진출을 위해 투자를 시작한 SK텔레콤은 2006년 5월 힐리오 서비스를 시작했으나 2년여 동안 이미 6억 달러를 육박하는 손실을 기록했다. 론칭 당시만해도 2009년까지 3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 본격적인 미국 시장 확대를 장담했던 SK텔레콤의 힐리오는 서비스는 가입자 20만명에 그치고 말아 전략적인 방향설정조차 부담스러운 상황에 몰리고 말았다.SK텔레콤은 힐리오를 살리기 위해 스프린트 인수를 검토할 정도로 애착을 보였으나 미국내 MVNO시장 자체의 전망이 어두워지자 비싼 수업료를 치렀다는 선에서 그치자는 판단에 따라 버진모바일USA 주식 5천만달러어치를 받는 대가로 힐리오 브랜드에 대한 미련을 접어버린 셈이다.
▲ 매각 효과 한국 증시뿐 아니라 NYSE(New York Stock Exchange,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돼 있는 버진모바일에도 영향을 미쳤다. 버진모바일USA(VM)는 힐리오 인수 소식에 힘을 받은 때문인지 25일 종가기준 전날의 2.91달러보다 5.5%가 오른 3.07달러를 기록했다. 증시 애널리스트들은 다소 엇갈린 분석을 내놓고 있지만 양사의 장점을 충분히 활용된다면 시장 확대가 가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후불제인 힐리오는 음성과 다양한 멀티미디어가 활용된 데이타 서비스의 강점이 있다. 버진모바일은 사전 약정된 금액만 사용하는 선불 정액제와 79달러선의 무제한 선불 요금제의 음성통화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결국 양사는 이용 고객층이 확연하게 나눠지고 있으나 이번 합병으로 편향적인 방향의 서비스 융합 및 교차 활용이 가능하게 돼 다양한 소비자 요구에 최적화된 상품 개발이 가능해졌다. 양사 모두 스프린트 망을 대여해 사용하고 있어 이 부분에 대한 일정부분의 비용 절감도 기대된다.
SK텔레콤의 한 관계자는 “이미 5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버진모바일의 고객들에게 SK텔레콤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무선통신 기술과 서비스가 접목돼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다. SK텔레콤은 향후 버진 모바일의 주주로서 추가 투자를 계획하고 있어 추후 역(逆)인수합병 시나리오도 충분히 가능해보인다. 이달초 지주회사인 SK(주)의 이사회를 뉴욕에서 열 만큼 이동통신을 비롯한 미국 시장 공략에 공을 들이고 있는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행보가 이러한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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