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무고한 죽음에 침묵할 것인가

금강산 관광 10년만에 남한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맞고 사망하는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했다. 건장한 체격의 젊은이도 아닌 50대의 치마를 입은 여성이 북한 경계병이 쏜 군사용 살상무기에 처참하게 쓰러졌다.

객관적인 사실만 본다해도 피해자는 평범한 관광객에 불과했고 북한군의 총격에 죽을 어떠한 이유도 없어 보인다.
북측의 성의없는 사건 경위와 억지스런 답변, 인명사고가 발생하면 여지없이 터지는 한국 당국의 무책임한 안전불감증 그리고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늑장대응 등을 전해듣노라면 분통이 터질 따름이다.

숨진 박왕자씨가 해변을 걸어서 갔든 뛰어서 갔든, 철조망을 넘어 북측 초소로 갔다 돌아오는 길이든 아니든 간에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이 발사한 AK소총에 의해 싸늘한 죽음이 된 사실은 한반도의 불안한 상황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뉴스감이 돼버렸다. 여러가지 사건의 경위가 재구성되고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부검 결과를 토대로 사건 해결의 실마리 등이 속속 발표되지만 북한측은 절대로 자신들의 과잉대응에 대해서 사과를 하거나 관계자를 처벌하는 양심적 행동을 취하지 않을 것같다. 그런 걸 기대한다는 자체가 무리다. 북측이 군사경계구역에 민간인이 침범하는 바람에 우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었으니 어쩔 수 없다라는 식으로 얼버무리기라도 한다면 그나마 성의를 보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판이다.

이번 박왕자씨의 피격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지구개발 담당 업체인 현대아산도 소홀한 관광객 안전관리를 지적받고 있다. 사업진행 여부를 재고해야 할 만큼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그러나 사건발생 당일에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예정대로 금강산 관광을 즐기고 있었다. 싸늘한 박왕자씨의 시신이 영동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향하는데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말이다.

한국정부와 정치권에서는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며 북측의 과잉대응을 비난하며 진상규명을 촉구하고 있다. 모두 ‘있을 수도 없고,있어서도 안되는 일’이라며 입을 모으로 있다. 299명의 대한민국 국회의원들이 입을 모으는 데  국민 한사람의 죽음이 필요했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씁쓸하다.

얼마전 수십만이 참여했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는 수그러들었다. 촛불집회를 주도한 인권시민단체들은 촛불집회 과정에서 벌어진 인권침해 상황에 대해 유엔에 특별진정을 내겠다고 밝히고 있다.

촛불집회 과정에서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강제연행과 구속,인터넷상 표현의 자유 억압등 일련의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졌다며 유엔에 보고서를 보낸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그러나 인권을 강조하는 이들 시민단체들은 어찌하여 대한민국 국민이 북한군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은 외면하고 있는 지 모르겠다. 비무장한 관광객을 사살한 북한측에 책임이 전적으로 있고 이유야 어찌됐건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이 숨졌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침묵하고 있다. 군사용 살상무기에 의해 시민이 죽은 명백한 인권 유린 현장을 목격하면서도 촛불을 들었던 그 수많은 시민들은 침묵하고 있다. 사건의 진상 조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일까. 분단 이래 사안의 내용과 상관없이 58년동안 유지해온 북한측의 성의없는 변명과 억지스러운 자세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대한민국 국민들은 왜 이번엔 촛불을 들지 않는 것일까.  국제평화와 인권을 다루는 유엔에 보내려는 보고서는 다름아닌 박왕자씨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에 관한 내용이 들어차야 어울릴 것이다.

공교롭게 미주 한인사회는 지난해 연말 라하브라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피격 당한 한인 마이클 조씨의 사건의 진상조사를 위해 지금 작은 마음들을  모으고 있다. 미주 동포들은 미국 공권력의 과잉대응에 희생된 한 젊은 동포의 희생을 안타까워 하면서 미국 당국이 한사코 침묵하고 있는 가운데 언제 끝날지 모르는 긴 싸움을 시작하고 있다. 상황은 전혀 다르겠지만 과잉대응에 의한 죽음이란 점에서 박왕자씨와 마이클 조씨의 희생이 겹쳐진다. 죽은 자는 언제나 말이 없다. 그러나 죽은 자의 죽음을 헛되게 해선 안된다는 교훈은 그 어떤 구호보다 더 크게 귓전을 때리고 있다.

김윤수/미주본사 취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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