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기간 39년, CEO 15년, 연봉 7190만달러(약 719억 원), 최대 개인주주….’
158년 역사의 ‘금융제국’ 리먼브러더스에서 리처드 풀드 회장 겸 CEO(62)는 분명 ‘황제’였다. 하지만 미국 4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결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 여파로 14일 파산신청을 하게 되면서 풀드 회장도 ‘불패신화의 주인공’에서 ‘실패한 CEO’로 몰락했다.
1969년 콜로라도대 졸업과 동시에 리먼브러더스에 입사한 이래 단 한 차례도 회사를 떠난 적이 없는 풀드 회장은 리먼브러더스의 성장을 이끈 선구자라 할 만하다. 84년 리먼을 인수했던 아메리칸익스프레스가 94년 기업공개(IPO)를 단행해 보유주식을 처분하고 떠나버렸을 때 적대적 인수·합병(M&A) 속에서 회사를 지켜낸 이가 풀드 회장이었다. 리먼이 많은 돈을 꿔줬던 헤지펀드 롱컴캐피털이 98년 파산했을 때도 극적으로 회사를 살려냈고, 2000년 이후에는 투자은행 업무인 증권 인수와 M&A 중개 부문 등을 확장시켜 리먼브러더스의 중흥을 이끌었다.
또 서프프라임 채권을 대량으로 사들여 재포장한 뒤 되파는 작업을 통해 저금리시대이던 2006년 당시 막대한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경제주간지 포브스 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풀드 회장은 연봉 5170만달러(약 517억원)로 고액 연봉CEO 21위에 오른 데 이어 올해에는 7190만달러로 11위에 올라섰다. 풀드 회장이 지난 5년간 리먼으로부터 받아간 금액은 무려 3억5403만달러(약 3540억원).
풀드 회장의 성공신화 뒤에는 지칠 줄 모르는 승부욕과 공격성, 불같은 성격 등이 숨어 있었다. 풀드 회장은 서브프라임 사태로 회사가 위기를 맞았어도 30년지기 친구인 조 그레고리 최고자산운용책임자(CIO) 등을 희생양 삼아 자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너무 자신만만했다. 지난 4월 당시 1년 사이 회사 주가가 45%나 빠진 상태에서도 주변 환경이 여전히 만만하지 않지만 신용경색은 한숨 돌렸다며 자신감을 표시했다. 월가에선 뉴욕연방준비은행 이사이기도 한 그의 수완이 발휘될 것을 기대했지만 이번엔 결국 통하지 않았다.
리먼의 몰락과정에서 풀드 회장의 보수적인 사고가 패착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분석이 구구하다. 리먼은 매 분기 손실 규모가 커감에 따라 과감한 구조조정이 필요했지만 계속 주저하다가 위기가 증폭됐다. 리먼의 자회사인 뉴버거버먼은 우량 자산운용사로 조기 매각이 가능했지만 결국 시기를 놓쳐 실패했다.
정은정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