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금융기관의 현지 법인 및 지점장들은 한결같이 “미국의 금융위기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전망했다. |
▶미국 실물위기 이제 시작이다=김계동 산업은행 뉴욕지점장은 “미국의 구제금융법안이 통과되더라도 금융위기가 진정돼 정상을 찾는 데에는 최소 5년 이상이 걸릴 것”이라며 “한국 경제도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점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전 0.15%이던 오버나이트(하루짜리 초단기 외화 차입) 금리가 6~8% 치솟으며 은행들이 만기 도래한 기업 대출을 죄다 회수하고 있다고 했다. 기업의 자금줄이 말랐다는 얘기다. 그는 “뱅크런의 공포가 시장을 뒤덮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민이 느끼는 심각성도 고조돼 여행을 자제하는 등 소비 부문도 큰 영향을 받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계 은행들의 피해 또한 크다고 전했다. 김 지점장은 “대부분 현지에서 자금을 조달해 영업하는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의 경우 조달 비용이 크게 늘어 순이자 마진이 급격히 줄고 유가증권 평가손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기관 불신 팽배가 더 큰 문제=이영종 신한뱅크아메리카 부행장은 “문제는 금융기관의 자금난이 아니라 고객들의 불신”이라고 현지 상황을 요약했다.
미국 금융기관은 이미 신뢰를 잃었고 상업은행은 벌써 12개가 도산하는 등 그 여파가 상업은행으로까지 번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기관들이 벤치마킹했던 4위 은행인 와코비아가 무너지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고 밝혔다.
앞으로의 미국 경제에 대해 이 부행장은 “7000억달러가 투입된다는 전제하에 최상의 시나리오는 내년 상반기까지 금융위기가 지속된다는 것”이라며 “그러나 실물경제 침체는 훨씬 더 오래갈 것이라고 현지에서는 예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은 삼성증권 뉴욕법인장은 “월가에서는 지금보다 앞으로를 더 걱정하는 분위기”라며 “구제금융안이 통과돼 ‘급한 불’은 끄더라도 향후 인플레이션과 경제 성장 둔화 등 펀더멘털 훼손을 우려해야 할 시기가 올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미 정부는 ‘시장원리’라는 원칙을 깼다는 비판 속에 구제금융을 선택했기 때문에 차후 발생할 문제에 어떤 기준으로 개입하고 정당화할지를 놓고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자금 조달 어려움 당분간 지속=김 법인장은 한국 영향과 관련해 “글로벌 펀드들이 모두 현금을 들고 있어 달러 부족으로 인한 원화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은행 해외 지점에서는 연말을 대비해 두 달 전부터 외화 모으기에 주력하는 양상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김 법인장은 최근 국내 증시의 외국인 매도세에 대해서는 “한국 시장이 나빠서라기보다는 유동성 확보가 급하기 때문”이라며 근본적인 수급 불안으로는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영선 대우증권 뉴욕법인장은 “수정 법안의 의회 통과 여부보다는 후유증 대처가 관건이 됐다”면서 “미국민 정서는 금융사들이 파산하더라도 놔두라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박 법인장은 월스트리트의 화이트칼라들이 점심때 거리의 값싼 음식에 길게 줄을 서고 식당은 텅텅 비어 있다며 실물경제로의 전이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실감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GM이 자금 조달 창구가 막혔고 구글 같은 기업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국내 기업이나 대한민국 정부가 이쪽에서 자금을 조달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상현.허연회.이태경.정지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