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나라은행 뉴욕진출 10주년


▲ 나라은행이 뉴욕에 간판을 내건지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진은 뉴욕 맨해튼내
한인타운에 위치한 나라은행 지점.
사진제공=나라은행

ⓒ2008 Koreaheraldbiz.com

나라은행이 뉴욕 한인커뮤니티에 들어선지 10년. ‘LA에서 온 교포은행이 뭘 알겠어’라는 차가운 시선 속에 LA은행으로는 처음으로 뉴욕에 발을 들인 이 은행은 이제 뉴욕 한인커뮤니티 은행가의 선두주자로 확고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10년전인 1998년 10월13일 나라은행의 한국외환은행 뉴욕 플러싱 지점 인수는 타주진출을 통해 LA한인은행권의 새 지평을 열었다는 상징적 의미는 물론 은행이 수익의 3분의 1 이상을 동부지역에서 벌어들이는 밑바탕이 됐다. <표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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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전만해도 LA 한인은행이 타주에 지점을 연다는게 지금처럼 손쉽게 되는 일이 아니었다. 뉴욕의 경우 시장의 특성상 한인시장을 타겟으로 한 주류은행들의 공략도 거셌고 미국내 지점을 두는 한국계 은행들이 본점을 두던 곳이라 교포은행은 힘을 쓰기 어려웠다. 그러던 중 IMF로 외환은행의 플러싱 지점이 매물로 나오자 당시 나라은행을 이끌던 벤자민 홍 전행장은 재빨리 지점 매입에 나섰다.

일단 지점을 매입하고 영업을 시작했지만 캘리포니아와 뉴욕 시장의 판이한 차이점은 은행 관계자들을 당혹케 할 정도였다. 교포은행을 깔아보는 선입견에 에스크로 제도도 없었고 은행에서 쓰는 용어도 달라 뚫고 들어갈 여지가 많아 보이지 않았다. 홍 전행장은 “LA 한인은행가에선 왜 뉴욕을 가려 하느냐는 부정적인 시작이 지배적이었다”라며 “LA 한인들과는 비즈니스 종류도 다르고 법, 문화, 은행 시스템 등 무엇 하나 손쉬운 일이 없었다”라고 말했다.

동부진출 시작부터 지금까지 동부지역을 총괄하고 있는 김규성 본부장(EVP)은 “나라은행 자체를 모르기도 했거니와 본점과의 시차는 물론 뉴욕과 캘리포니아의 문화적 제도적 차이를 서로 이해하는데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진출 초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지만 담보없인 대출이 이뤄지지 않던 당시 뉴욕 한국계은행들의 관행이 나라에게 큰 기회가 됐다. 나라는 부동산 없이 사업체의 크레딧과 사업 가능성을 보고 대출을 내주기 시작했으며 주류은행들은 많이 취급하지 않던 중간 규모의 대출에 역량을 집중하며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틈새시장이라 할 수 있는 무담보 사업체 대출에 대한 수요는 유태인이나 라티노 커뮤니티에서도 컸고 적당한 부동산 담보는 없었지만 성공 가능성이 큰 사업체들이 많았기에 나라의 전략은 큰 성공을 거뒀다. 한국에서 파견나온 직원들이 고자세로 일관한 덕에 문턱이 높았던 은행 서비스에 친절함도 더해져 ‘나라 때문에 뉴욕 한인커뮤니티 뱅킹 서비스가 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본부장은 경영진이 동부지역본부의 직원들을 믿고 상당한 자율권을 준 점을 성공 요인으로 꼽았다. 김 본부장은 “서로의 차이점을 존중하면서도 꾸준한 대화와 교육으로 한 은행이라는 소속감을 심었으며 대출이나 은행 관리에 필요한 부서를 동부에 별도로 둬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한게 컸다”라며 “시간이 가며 실적이 나오자 서로간의 신뢰가 쌓여 어느순간부터는 성장세에 가속도가 붙었다”고 말했다.

뉴욕시장만을 놓고 따지면 나라은행은 10년만에 한인 커뮤니티를 공략하는 은행 가운데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뉴저지, 버지니아 등 동부지역 전체로 시장을 확대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그렇기에 지난해 지점 인수를 통해 뉴저지 시장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의미하는 바가 크다. 뉴욕에서 쌓아온 노하우와 인지도, 30억달러를 바라보는 은행 규모는 뉴저지 시장에서의 성공 가능성을 크게 하는 긍정적인 요인이다.

염승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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