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사랑 남기고 간 ‘바보’ 김수환 이야기

2001년 타계한 동화작가 정채봉씨가 1993년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직접 들어 쓴 추기경의 이야기다.
 
1993년 5월1일부터 8월7일까지 ‘저 산 너머’라는 제목으로 작가가 소년 한국일보에 연재했던 내용을 그대로 엮었다.
 
김 추기경이 사적인 얘기를 공개적으로 하기는 이 작품이 사실상 처음으로 어린시절과 성장과정, 신부가 된 이후 90년대 초까지의 얘기를 육성 그대로 담고 있어 기록적 의미가 크다.
 
이 책은 1,2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 ‘저 산 너머’는  병인박해때 순교하신 추기경의 할아버지 때부터 군위초등학교 5학년때까지의 이야기를 3인칭 시점으로 들려준다.
 
정채봉 작가 특유의 맑고 애잔한 정서가 녹아있는 동화적 성격이 짙다. 2부는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어 추기경이 성 유스티노 신학교에 들어간 다음 부터의 얘기를 직접 구술하는 고백록적 형태다.
 
동경상지대 시절 나라잃은 민족의 젊은이로서 정치, 혁명가의 길을 꿈꾸던 얘기, 학도병으로 끌려가 죽음의 위기 직전에 본 어머니 환상, 가톨릭시보사 시장 시절 만난 사형수 최월갑의 얘기 등이 추기경의 목소리로 담겨있다.
 
책의 끝부분에는 신문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와 59년만에 고향 군위마을을 찾았던 얘기가 실려있다. 추기경은 인간이 끝까지 지켜나가야 할 가치로 인간다움을 얘기하며, 고통속에 기쁨이 와 있다는 ‘설리춘색(雪裏春色)’의 이치도 들려준다.
 
정채봉 씨는 당시 이 작품을 연재한 뒤 책을 출간하려 했으나 추기경이 “지금은 남 보기 민망하고 부끄러우니 나 가고 난 뒤에 책으로 내더라도 내면 좋겠다”고 해  미뤄졌다. 그리고 원고를 다시 꼼꼼히 고치고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으나 그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가족 손에 남겨졌다. 추기경의 선종으로 당사자가 모두 세상을 떠 난 뒤 작품은  비로소 빛을 보게 됐다.
  
이윤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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