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본다.’ 국내 극장가에 여성의 삶을 조명한 영화와 영화제가 잇따라 선보인다.
먼저 현대사의 질곡 속 여성의 삶을 조명한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관객을 만나고 있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위안부 할머니의 법정 투쟁을 담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감독 안해룡)와 좌익 경력의 가족들로 인해 평생 멍에를 쓰고 살았던 한 여성의 삶을 조명한 ‘할매꽃’(감독 문정현)이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는 16세의 꽃다운 나이에 일제에 의해 위안부로 전장에 끌려다니며 철저하게 삶이 유린당했던 송신도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사죄를 받아내기 위한 법정 소송을 10년간 진행했던 송 할머니는 일본인들로 구성된 지지 모임과 함께 외로운 투쟁을 벌인다. 송 할머니는 누구를 향해서든 거침없이 호통을 쏟아내지만 과거를 떠올릴 때마다 눈물을 쏟아낸다. 동정이나 연민을 바라지 않고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는 송 할머니는 씩씩하고 유머러스한 성품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관객을 웃기고 울린다. 다큐멘터리지만 어느 드라마보다 강렬하다. ‘할매꽃’은 죽음을 앞둔 감독의 외할머니의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의 상처에 카메라를 들이댄 작품이다. 작은외할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가족사에 숨겨졌던 ‘좌익운동의 경력’과 연좌제로 인한 고통을 알게 된 감독이 전남의 한 작은 마을을 비극으로 몰아갔던 현대사의 한 자락을 추적한다. 식민지 시대와 해방,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남편과 큰오빠, 작은오빠가 모두 좌익활동에 투신하는 것을 본 감독의 외할머니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온몸으로 떠안아야 했다. 자신의 권유로 자수한 남편은 모진 고문의 후유증으로 술에 절어 살다가 자살했고, 큰오빠는 경찰의 총에 희생됐으며, 작은오빠는 그 충격으로 정신이상자가 됐다. 남동생은 일본에 건너가 조총련이 됐다. 비극의 한가운데에서 무너진 가족을 지켜야만 했던 할머니의 삶은 신산했다. 5남매의 어머니로, 폐인이 되다시피한 남편의 아내로, 시부모의 며느리로 이중 삼중의 짐을 짊어지면서도 이념 대결이 불러온 비극적인 가족사마저 감당해야 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와 ‘할매꽃’은 이 땅에서 태어났다는 죄만으로 고통을 감내해야 했던 여성들의 이야기다. 다음달 9일부터는 ‘여성의 눈으로 세계를 보자’는 취지로 시작된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11회째 행사가 8일간 서울 신촌 아트레온에서 열린다. 세계 여성들의 다양한 삶을 조명하는 영화들이 105편 상영된다. “좀 더 현실에 밀착된 이슈들, 일하고 먹고 살고 늙는 문제들을 통해 관객들에게 말을 거는 프로그램들을 마련했다”는 것이 주최 측의 말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불안정한 삶으로 내몰린 여성들의 노동 문제를 조명한 ‘여성노동과 가난’ 특별전, 고령 여성의 성과 사랑, 기술 정보로부터의 소외, 고령 장애인, 새로운 도전 등 나이 듦을 둘러싼 화두를 밝히는 ‘천 개의 나이 듦’전, 성적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퀴어 레인보우’ 등의 다양한 부문이 마련됐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