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3사 일일극의 성격이 극명하게 나눠지고 있다. 막장드라마와 정통 홈드라마, 막장과 정통을 오가는 드라마 등이다. 원래 저녁 일일극은 가족들이 보는 시간대라는 특성 때문에 소소한 이야기를 담는 가족극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광고시장이 극도로 침체에 빠지면서 일일극도 자극적이고 비현실적인 억지 설정을 활용하고 있다. 독성이 가장 강한 조미료를 들고 나온 일일극은 SBS ‘아내의 유혹’이다. ‘아내의 유혹’에서 불필요한 의례적 절차를 무시하고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빠른 전개는 미덕이라 할 수 있다. 이야기가 늘어지지 않고 계속 사건을 집어넣어 갈등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갈등을 증폭시키거나 풀어내는 캐릭터들이 하나같이 비정상적이며 사건도 거의 복수극으로만 이어지고 있다. 정교빈(변우민 분)에 의해 배신당한 은재(장서희)가 교빈과 애리(김서형)에게 복수하는 과정에 민사장(정애리)과 과거 정회장(김동현)의 복수가 세트처럼 물려있다. 악녀 애리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은 은재에게 복수의 길을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돌아온 진짜 민소희(채영인)와 힘을 합쳐 은재에게 복수를 한다면, 여기서부터는 시청자의 감정선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이미 ‘민소희의 리턴즈’로 네티즌에 의해 패러디된 것처럼 지금은 진짜 소희가 애리와 손잡고 은재를 못살게 군다는 ‘시즌3′에 돌입했다. 의붓오빠 건우(이재황)와의 사랑을 이루지 못해 자살까지 감행했던 소희는 정신분열 증상을 지닌 핵폭탄 캐릭터로 돌아오자마자 시종 악소리를 질러댔다. 비현실적이고 독한 캐릭터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그 못지않은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 당장 시청률을 올리 수 있다고 해도 강한 조미료를 많이 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KBS ‘집으로 가는길’은 정통 홈드라마의 길을 걷고 있다. ‘아내의 유혹’이 매일 싸우는 분노의 드라마라면 ‘집으로 가는길’은 잔잔하고 차분하며 훈훈한 인간애를 느끼게 하는 드라마다. 문보현 PD는 “요즘 드라마 트렌드로는 조금 심심할지 모르지만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볼 수 있고 따뜻한 느낌을 가졌으면 한다”면서 “조금 더 인간에 대해 천착하는 드라마”라고 설명했다. ‘집으로 가는길’은 갈등요소가 약하며 진행도 느린 편이어서 요즘 드라마 패턴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을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다. 이금림 작가가 집필하던 초반은 밋밋하고 잔잔한 분위기로 일관했다. 이 작가가 건강이 악화돼 작가가 교체되면서 ‘이혼한 상태에서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 수인(장신영)을 사랑하는 현수(이상우)’와 ‘인술을 고집하는 아버지(장용)와 병원경영에만 신경쓰는 장남 민수(심형탁)의 대조적인 모습과 아버지의 혼수상태’ 등 스토리의 갈등 윤곽이 분명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초반의 주제의식을 비교적 잘 지켜나가고 있다는 평이다. ‘집으로 가는길’은 젊은이들은 연애하고 사고치고 어른들은 이를 수습하는 단순 캐릭터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장용과 윤여정은 부부이자 각각 의사로서의 고민도 담고 있다. 어른들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이에 반해 MBC ‘사랑해 울지마’는 정통과 막장을 오가는 일일극이다. 기본적인 구도는 상투적인 가족통속극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비교적 잔잔하게 풀어가는 방식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에는 자극적이고 막장적 설정을 남용해 시청자의 분노를 샀다. 영민(이정진)과 미수(이유리)의 결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영민의 고모부 대성(맹상훈)과 미수의 이모이자 사실은 친모인 신자(김미숙)와의 사랑, 즉 사돈 간의 불륜을 오랜 기간 내보내 이들의 결혼을 방해하며 새로운 갈등을 유도해냈다. 이어 영민의 고모 영옥(김미경)이 강에 뛰어들어 자살을 시도해 혼수상태에 빠졌다. 결국 영민과 미수는 또다시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 “명품드라마가 막장드라마가 됐다”는 시청자 반응도 나왔다. 이 시점이 ‘사랑해 울지마’가 같은 시간대 방송되는 경쟁극 ‘집으로 가는 길’의 시청률을 처음으로 뛰어넘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설정이 시청률 올리기에는 성공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송 전문가들은 “자극적이고 독한 설정이 당장에는 시청률을 올려주는 요인이 될 수 있지만 결국 드라마의 질적 성장을 해치며 장기적으로는 드라마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충고했다. 서병기 대중문화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