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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닉과 음악성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연주, 팝스타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환호성과 박수, 본공연이 끝난 뒤에도 1시간이 넘게 이어진 커튼콜과 10곡의 앙코르….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의 두 번째 내한 독주회가 열린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였다. ‘키신의 환상’은 3년 만에 고스란히 재현됐다. 준비된 연주자와 준비된 청중 사이에는 처음부터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팸플릿을 넘기는 소리조차 커다란 소음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첫 곡은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모음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줄리엣’ ‘머큐쇼’ ‘몬태규와 캐퓰릿’. 키신은 서두르지 않고 여유있게 풀어냈다. 과장되거나 자의적인 해석이 없는, 원곡에 충실한 연주였다. 본래 오케스트라곡의 피아노 편곡 버전은 다이내믹하고 풍성한 소리를 이끌어내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운지 하나하나에 체중을 실어 묵직한 무게감과 웅장함을 살려냈다. 이날 연주회의 백미는 단연 1부 마지막 곡인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8번이었다. 1악장에서 키신은 피아노를 향해 납작하게 몸을 엎드린 채 한 음 한 음 훑어내리듯 연주했다. 페달링이 어찌나 섬세한지 잔향마저도 현기증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3악장의 왼손 테크닉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컴퓨터처럼 정확하고 깔끔하면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았다. 2부는 ‘쇼팽스페셜리스트’답게 쇼팽의 폴로네이즈, 마주르카, 에튜드로 꾸며졌다. 고르게 훈련된 열 손가락은 탱탱하면서도 싱그러운 소리를 뽑아냈다. 피아니시모(pp)로 연주할 때마저도 소리가 전혀 뭉개지지 않았다. 라이브로 감상할 수 있는 최상의 연주였다. 마지막 곡이 끝나자 “브라보”와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30여회의 커튼콜과 10곡의 앙코르 연주가 이어졌다. 7~8번째 앙코르 곡부터는 키신도 다소 지쳐 보였지만 끝까지 성의있게 화답했다. 8시에 시작된 연주는 11시30분 무렵에야 끝났고, 로비에서 열린 사인회는 자정을 훌쩍 넘긴 0시35분에야 마무리됐다. 말 그대로 ‘마라톤 연주’가 끝난 뒤 연주자도 청중도 탈진 상태였다. 하지만 막 사랑에 빠진 연인처럼 두 뺨은 상기돼 있었고, 얼굴에는 행복함이 가득했다. 경기침체와 불황 속에서 꿈마저 잃어버린 젊은이의 가슴을 사정없이 뛰게 한 그 밤, 키신이 보여준 것은 예술의 위대한 힘이었다.
김소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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