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맑은 날도 있지만, 천둥번개 치고 태풍 부는 날들도 많듯이, 한 십 년 승승장구하던 한인은행 주가도 바닥이다, 아니다 또 내려간다 아니 곧 반등 할거야 하면서 전전긍긍하고 있는 형편이다.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최악이라는 경제 대란 속에서 전세계 금융계는 방향 감각을 잃어버린 채 어둠 속을 헤매고 있다.
우리 한인 은행도 덜 하지는 않는 것 같고, 좋은 게 좋다고 잠깐 눈 감아 주고 또 몰라서 눈 감고 있던 여신 채권은 뻥뻥 터져 요즘 유행하는 모 가수의 ‘총 맞은 것 처럼’ 자다 가도 벌떡 일어날 손실이 코 앞에 찰싹 달라 붙어 있는 것 같다.
이러다보니 누군가 잘못한 사람을 찾아 책임을 묻고 분풀이를 하고 싶은 마음을 손해 본 사람이라면 안으로 새기며 한인 은행계의 향후 방향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형편이다. 책임을 맡고 계시는 많은 커뮤니티 은행 관련 이사님들께서 잘 판단하시고 결정하시어 일을 추진해야 할 것으로 믿고 또 믿는 마음과 함께 말이다. 최근 도하 신문들의 많은 경제 지면들은 지난 수십년 동안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십수개의 한인 은행들의 합병을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차치하고서라도, 6가 선상의 아무 한인 가게나 들어가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종업원에게 간단하게 “한인은행이 너무 많죠?” 하고 물어 보면 아마 10명 중 10명이 다 “예”라 답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한 일이니, 답은 역시 수를 줄이는 합병 뿐이라 생각된다. 심지어 단세포 편모충인 클라미도미나스도 생존환경이 열악해지면 둘로 갈라져 있던 몸이 하나로 뭉쳐진다. 금융기관 통폐합의 교훈 1997년 IMF 사태시에도 한국에서는 10개 시중은행을 포함하여 375개의 금융기관이 통폐합됐다. 당시에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경제회복의 기틀을 마련해 주었고, 빠른 시일 안에 IMF 구제금융에서 졸업하게 해주었다. 통폐합으로 경쟁력이 회복된 금융권의 든든한 자리매김은 한국이 세계 11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는 원동력이 되었다. 우리 한인 경제가 처해 있는 작금의 현실은 10년 전 한국이 겪었던 위기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답을 가르쳐 주고 시험을 치르고 있는데, 답답하다 못해 울화병이 날 지경이다. 그런데 왜들 합병을 못하고 있는 걸까? 최근 어떤 매체에서 한인은행들이 합병을 못 하는 문제는 ‘이사님 들 때문에’ 라는 기사를 실었다. 필자도 긍정 또 긍정이다. 물론 ‘합병’이라는 말은 쉽지만 추진하기는 정말 어렵다. 이거 한번 하려면 그냥 평범한 합병 계약서만해도 빽빽히 50장은 된다. 짚고 넘어갈 게 너무 많다는 거다. 그래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격은 얼마로 할 건가? 두 은행이 하나로 바뀌니 행장도 두 명이나 필요치 않을 것이고. 최고 관리 직원들도 두 명씩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 누구를 자를까? 지점은 내 것을 닫아 네 것을 닫아? 머리 아픈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사심 버리고 신뢰의 의무 지켜야 우리 한인 은행계의 합병에 있어 가장 큰 장벽은 누가 합병 은행의 이사가 되고 누구는 집에서 쉴 것이냐는 질문에 흔쾌한 명답이 안 나오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제는 대안이 없다. 생존이 달려있는 문제이다. 필자는 1989년부터 2005년말까지 약 1,100개의 저축은행(Savings and Loans- 예 : 인디맥, 컨트리와이드 등) 폐쇄 작업에 직접 참여하면서 은행의 경쟁력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해오고 있다. 문제가 많다고 자체 평가된 은행들은 사심을 버리고 짝 찾는데 주력을 다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솔직히 현 시점에서 계속 증자로만 손실을 채워넣기는 무리가 아닐까? 합병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이사님들께 드리고 싶은 조언은 이사회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책임은 ‘신뢰의 의무 (Fiduciary Duty)’ 라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숙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뢰의 의무’ 중 가장 큰 의무는 이사회에서 선택한 경영진이 이사들을 포함한 모든 주주들의 주식 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지도 편달 감독해야 하는 것이다.
이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면 중과실 또는 직무유기라는 오명과 책임을 져야할 위험이 숨어 있다. FRB, FDIC 등 정부 은행감독기관들은 CAMEL이라는 평가제도 속에서 감사를 진행한다.
여기서 M은 Management의 약자이며, M 속에는 경영진과 이사회를 포함시킨다. 감사 결과 3점 이상을 받으면 최악의 경우가 되는 데, 이런 점수를 맞은 은행의 경영진과 이사진은 ‘중과실’을 저질렀다는 소액주주들의 ‘분노와 질책’을 막아내기가 무척 힘이 들지 않겠는가.
우리 한인은행들은 지난 십수년 동안 우리 재외교민의 자랑스러운 고용주였고, 사업파트너였으며 젊은 은행가들의 꿈의 산실이었다. 필자는 몇몇 사심을 버릴 수 없는 분들 때문에 ‘모 은행 FDIC에 의해 폐쇄’ ‘총 이사회 FDIC와 소액 주주들로부터 거액 피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최기호 CKP 회계법인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