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eraldk.com/wp-content/olddata/uploads/junk/49f0b461427b4.jpg)
|
▲ 병역을 마치고 돌아온 조성모는 새로운 시도보다 자신의 스타일에 깊이를 더한 음악으로 팬들을 찾았다.
ⓒ2009 Koreaheraldbiz.com | |
몸무게를 20㎏ 가까이 줄였고, 몸에 좋은 음식과 운동을 늘 세심히 고른다. 음표와 도돌이표의 나열에 집착하기보다 그 악기 위를 넘나들 음악의 질과 그가 설 무대에 신경을 썼다. “저는 싱어송라이터가 아닙니다. 보컬리스트죠. 무대 위에서 라이브, 표정, 비주얼이 종합적으로 모여 딱 100이 된다고 생각해요. 완벽한 무대에 충실하는 게 보컬리스트인 제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타이틀곡 ‘행복했었다’의 작사ㆍ작곡을 맡은 하정호, ‘사랑의 역사’의 윤종신, ‘트랜지스터’의 에코브릿지는 조성모가 수백명의 아티스트 중 고심을 거듭해 고른 명인이다. 얼마나 많은 히트곡을 낳았는지, 얼마짜리 곡을 써왔는지에 대해서는 오히려 눈을 감았다. “이제는 같이 작업하는 분의 성품까지 보게 됩니다. 좋은 작품과 글도 좋지만 그 삶이 이율배반적이면 믿음이 가지 않아요. 곡은 100만원짜리인데 그 삶이 50만원짜리이면 제게는 그저 50만원짜리 아티스트일 수밖에 없는 겁니다. 노래는 그래요. 사업이 아니죠. 작업하는 사람의 마음과 행실 하나하나가 모여 완성된 무대를 이루는 거예요.” 돌아온 조성모에게 일부 음악 관계자는 큰 변화를 기대했다. ‘발라드가 아닌 R&B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댄스, 후크송은 없을까’하는 기대다. 하지만 조성모는 이리저리 외연을 넓히기보다 밑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조성모’라는 악기로부터 듣고 싶어 하는 노래를 가장 잘 ‘연주’하는 데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마음가짐이었다. “처음엔 다른 욕심이 있었죠. ‘저 사람이 정말 조성모냐’라는 말을 들을 만큼 극명한 변화를 주고도 싶었어요. 하지만 저로부터 듣고 싶어하는 노래가 있죠. 일단 그에 부응하는 게 보컬리스트인 제 임무라고 생각했어요.” 조성모의 노래는 혼자 부르는 곡이 아니다. 그의 가사는 어렵지 않다. ‘나 정말 행복했었다/나 정말 사랑했었다’는 가사는 한 번쯤 사랑을 해봤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추억을 떠올릴 수 있을 만한 내용을 담았다. 음역대도 한층 낮췄다. 컨디션이 나쁘면 부르지 못할 만큼 고음이 많은 게 그의 노래였다. 이번엔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한 곡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 출렁이던 감정에도 고삐를 죄었다. 슬픈 영화를 보고 눈물을 철철 흘리던 조성모가 이제는 30대의 문턱을 넘어섰다. 눈물을 한번 삼켜낼 수 있는 법, 소리를 지르는 대신 속으로 슬픔을 되뇌는 법을 배웠다. 그것이 음악에도 자연히 배어들었다. “제가 부르는 노래는 저만의 노래가 아니에요. 제 노래를 듣고 저마다 감정을 이입해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는 곡이지요. 그러려면 제 감정을 너무 이입시키기보다 오히려 한 발짝 물러나 노래를 바라보는 편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7집 제목은 ‘세컨드 하프’, 즉 후반전이다. 데뷔 11년차를 맞은 조성모의 음악인생도 이제 후반전에 접어들었다. 전반전에서 조성모가 연예인에 가까웠다면, 후반전의 그는 ‘아티스트’를 꿈꾼다. 후반전을 지배하는 그의 전략은 ‘포기하는 순간 경기는 없다’는 것. “전반전에서 너무 큰 골맛을 봤다”며 씁쓸해하는 그는 “후반전은 끈기와 근성의 싸움”이라고 말한다. 오르내리는 인기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것, ‘조성모’라는 악기를 끊임없이 갈고 닦는 것, 자신만의 노래가 아닌 타인과 함께할 수 있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서른셋 조성모가 꿈꾸는 ‘세컨드 하프’이다. 김윤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