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루미늄판위 ‘허구’의 초상이 숨쉰다


▲ 치열하게 예술혼을 불태웠으나 외롭게 스러져간 화가 반 고흐를 그린 강형구의
신작 ‘책 속의 반 고흐’(310x210x110cm).          고독한 거장의 눈빛이 형형하다.

ⓒ2009 Koreaheraldbiz.com

강형구 아라리오 서울·뉴욕展

인상파 화가 반 고흐가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그림으로 세계미술계에 강펀치를 날렸던 화가 강형구(55). 

초록 눈의 이 반 고흐 초상화는 지난 2007년 홍콩 크리스티경매에서 열띤 경합 끝에 5억4631만원에 팔려나 갔고, 이후로도 그의 작품은 계속 상종가를 치고 있다.

이 인기작가가 아라리오 서울(4월21~5월17일)과 아라리오 뉴욕(5월7~6월20일) 갤러리에서 연속적으로 작품전을 연다.


▲ 평면작품 ‘헵번’(120x240cm) 

ⓒ2009 Koreaheraldbiz.com

강형구 작가는 마를린 먼로, 앤디 워홀, 오드리 헵번 등 세인들의 뇌리에 각인된 아이콘을 대형 캔버스에 강렬하면서도 호소력 짙게 묘사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초대형 자화상도 즐겨 그린다.
 
그가 사람의 얼굴을 2m도 넘는 대형화폭에 그리는 것은 얼굴이야말로 그 인간의 성징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때문이다. 또 인간의 표정이며 주름살, 터럭까지 잡아내려면 작은 화폭으론 성이 차지 않는다는 것.
 
2년 만에 갖는 이번 개인전에 작가는 알루미늄 패널에 그린 신작을 내놓았다. 차갑기 짝이 없는 알루미늄 판에 아크릴물감은 물론 에어브러시, 못, 드릴 등 온갖 도구를 총동원해 치열하리만치 극사실적으로 그려진 인물들은 미묘한 잔주름, 솜털, 흩날리는 은빛 머리카락이 알루미늄이라는 새 소재를 만나 한층 섬뜩하고 강렬한 표정을 쏟아내고 있다. 예리한 금속성 판 위에 얹혀진 얼굴들은 그 형형한 눈빛과 주름이 관람자를 왈칵 사로잡는다.
 
강형구 작가의 인물화는 대상을 그대로 옮긴 듯하지만 강조와 왜곡을 통해 인물의 재현을 넘어서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세월을 드러내기도 하고, 지나온 생을 대변하기도 하는 유명인사의 초상을 과장되게 확대한 그림들은 강한 충격을 주며 직접적인 교감을 이끌어낸다.
 
게다가 알루미늄은 이러한 의도를 더욱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매체로서, 관객의 위치에 따라 표면의 모습이 달라지는 착시효과까지 선사한다.
 
이번에 작가는 책 모형의 대형 조형작품도 출품했다. 아브라함 링컨, 존 F. 케네디, 빈센트 반 고흐의 얼굴을 담은 높이 2.1m, 가로 3m의 거대한 조각들은 강형구 작가가 가장 존경하는 세 인물의 초상화와 그들이 남긴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고난과 역경을 딛고 한 나라의 지도자로 업적을 쌓았으나 안타깝게 요절한 이들의 삶을 ‘강형구식 어법’으로 입체화한 것.
 
200호가 넘는 강형구의 드라마틱한 인물화는 스페인의 아르코, 독일의 아트 쾰른, 미국의 아트 시카고 등 유수의 아트페어와 주요 경매에서 반응을 일으켰다.
 
작가는 “팔리지도 않는 자화상을 10여년 넘게 끈질기게 그리니까 내 별명이 한때 ‘팔포’(팔기를 포기한)였다. 그런데 무슨 조환지 최근 4,5년 전부터 내 대형 자화상이 마구 팔리고 있어 나도 놀랍다”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어 “내 작업을 흔히 하이퍼 리얼리즘으로 분류하지만 나는 허구마저도 사진처럼 그려질 수 있는 ‘회화의 특권’을 지향한다. 허구를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게 회화의 매력 아니냐? 따라서 내 그림은 하이퍼 리얼리즘의 대척점인 ‘허구’를 그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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