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날 ‘특별한 웨딩샷’…난 네게 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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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 뛰어. 자 여기 보고! 이번엔 물장구 한 번 쳐 볼까요?”
 
서울 청담동의 한 웨딩스튜디오. 소녀시대의 댄스곡 ‘지(gee)’가 스튜디오를 가득 메웠다. 열 명 남짓한 스태프는 “좋아”, “여기”를 외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정성껏 차려입은 신부가 펄쩍펄쩍 뛰기 시작한다.
 
신랑은 턱시도 차림에 하얀 하이톱 슈즈를 신고 촌스러운 복고풍 안경을 썼다. 웨딩 사진이라기보다는 패션 화보나 광고 사진을 닮았다.
 
최근 웨딩 사진이 급격히 변화하고 있다. 로코코풍의 가구와 벽지를 배경으로 짐짓 점잖은 체하며 찍었던 웨딩 사진들이 대담하고 솔직해졌다. 
 
예비부부들은 노란 자동차 위에서 활짝 기지개를 켜는가 하면, 맨발 차림으로 천진난만하게 물장구를 친다.
 
최근엔 웨딩드레스마저 벗었다. 청바지에 운동화는 물론, 옛 교복까지 웨딩 사진에 등장했다. 밝고 진취적인 느낌이라면 모두 환영이다. 제약도, 한계도 없다. 상상력만 존재할 뿐이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올 5월에 결혼하는 김선아(31) 씨는 “올 들어 가장 많이 웃어본 것 같다. 정신없이 떠들고 웃다 보니 4시간의 촬영 시간이 어떻게 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권현지(32) 씨는 “기존 웨딩 사진의 틀에서 벗어나 감각적”이라고 평했다.
 
미디어는 새로운 트렌드에 힘을 실어줬다. 지난해 TV 예능 프로그램인 ‘우리 결혼했어요’에서 손담비-마르코, 황보-김현중 커플의 웨딩 사진이 공개되면서 해당 스튜디오를 찾는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
 
IT웨딩서비스기업 ‘아이웨딩네트웍스’의 김현철 홍보팀장은 “TV나 인터넷을 통해 샘플 사진을 접한 젊은 신부들이 먼저 문의를 해온다. 수요가 많은 만큼 비슷한 느낌의 스튜디오와의 교류를 늘려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멋지고 예쁘게만 나온다면…웨딩 합성사진도 OK

▶웨딩사진도 이젠 트렌드다
 
지난 2005년과 2006년은 웨딩업계가 맞은 최대 호황기였다. 쌍춘년의 영향으로 2006년 한 해 동안만 혼인이 전년도보다 2638건 늘어난 7만394건으로, 하루 평균 203쌍의 신혼부부가 탄생했다.
 
웨딩스튜디오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구호스튜디오’의 최현구 실장은 “당시 웨딩스튜디오만 청담동 근방에 300여개에 달했다”고 말했다. 경쟁은 치열해졌고, 사진 기술은 상향 평준화됐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와 시도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원규앤노블레스’ ‘구호스튜디오’ 등 일부 스튜디오에서 디지털카메라의 장점을 활용한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당시 업계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최원규 포토그래퍼의 ‘웨딩 합성 사진’도 그즈음 등장했다.
 
웨딩 사진 속에 또 다른 웨딩 사진을 담은 2중 구조의 사진이었다. ‘원규앤노블레스’의 최원규 대표는 “당시 사진을 내놨을 땐 ‘미쳤다’고들 했다. 사진으로 장난을 친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하지만 정작 예비부부 사이에서의 반응은 상당했고, 이제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디지털카메라의 확산도 또 다른 원인이다. 기존 필름 사진에 비해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은 원가가 낮은 편이다. 최 대표는 “‘디지털카메라로 찍는 스튜디오는 싸구려’라는 고정관념이 싫었다. 디지털카메라만이 가진 장점을 극대화하면 필름카메라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수없이 셔터를 눌러 동적인 모습을 포착하기 쉽고, 사진 합성 또한 자유자재로 가능한 디자털 사진은 발랄하고 활동적인 새로운 웨딩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진화하는 웨딩 스튜디오
 
웨딩 사진은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높아진 고객들의 눈을 맞추고, 줄어든 고객들을 사로잡기 위해 오늘도 포토그래퍼들은 좀 더 창의적인 장면을 고민한다.
 
‘그리다 스튜디오’의 박기욱 이사는 “예전에는 웨딩 사진이 정형화돼 있어 굳이 기획회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정기적으로 스태프와 모여 사진의 전체적인 방향과 아이디어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자리가 생겼다”고 말했다.
 
웨딩 사진의 눈부신 발전은 광고와 패션 사진에도 영향을 미쳤다. 웨딩 사진에서 시작된 아이디어들이 광고나 패션 화보에 응용되는 사례가 많아졌고, 급기야 광고나 패션계에서 활동하던 포토그래퍼들이 웨딩시장으로 넘어오기도 한다. ‘제5스튜디오’의 김보화 작가는 패션 화보로 이름을 날렸지만 최근 웨딩 사진에 매력을 느끼고 전향을 선언한 경우다.
 
웨딩 포토그래퍼들은 “웨딩 사진의 발전을 위해선 저작권을 보호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새 아이디어가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사진들이 각 웨딩 스튜디오에 퍼지곤 한다.
 
한 포토그래퍼는 “내가 찍은 사진이 다른 웨딩 스튜디오에 걸려 있어 따져 물었더니 ‘우리는 원래 그렇게 장사한다’고 천연덕스럽게 답하더라”고 말했다. 현재 법률상으론 포토그래퍼의 저작권을 보호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구호스튜디오’의 최현구 실장은 “웨딩 사진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발전하기 위해선, 웨딩 사진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저작권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힘줘 말했다.   

김윤희 기자



고향·학창시절·첫키스…웨딩사진 추억을 담는다

‘남는 건 사진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요즘 예비부부들은 사진뿐만 아니라, 사진을 찍는 과정까지 오롯한 추억으로 남기고 있다.
 
아직 프러포즈를 못했다면, 웨딩 사진을 빌미삼아 로맨틱한 이벤트를 준비할 수도 있다. A웨딩스튜디오는 명동 한복판에서 수많은 인파에 둘러싸인 채 신랑이 신부에게 프러포즈하는 장면을 웨딩 사진에 담았다. 해당 포토그래퍼는 “신랑이 처음엔 굉장히 쑥스러워했지만 나중에 ‘잊지 못할 프러포즈 추억을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신랑과 신부의 추억의 장소를 웨딩 앨범에 담는 일명 ‘다큐멘터리’ 장르는 이미 일반화된 지 오래다. 신부가 태어났던 집, 학창시절 입었던 교복, 첫 키스 장소 등이 시간순으로 웨딩 앨범에 차곡차곡 담긴다.
 
일생에 단 한 번 패션모델이 돼 보는 것도 좋겠다. 화려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패션모델처럼 도발적인 포즈를 취한다. 웨딩드레스가 아닌 다양한 의상과 소품을 이용해 발랄하고 진취적인 느낌을 살린 사진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등장하는 웨딩 사진은 어떨까. 제3자 입장에서 촬영 과정을 지켜봤던 부모님과 친구들이 요즘엔 사진 프레임 안에 들어와 결혼을 축하하기도 한다. B스튜디오 관계자는 “양가 부모님과 함께 미사리에 소풍을 가서 찍어온 웨딩 사진이 예비부부 사이에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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