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방송’ 개그에 걸리면 뼈도 못추린다?

예능 프로그램은 적당히 순화된 재미의 요소가 강하지만 개그 프로그램으로 넘어오면 패러디의 강도가 더 높다. 그 중 KBS ‘개그콘서트’의 몇몇 코너들은 방송의 갖가지 부정적인 측면을 꼬집는다.
 
지난 5일 첫 방송된 ‘끝장TV’에서는 코너명에서부터 알 수 있듯 ‘막나가는’ 방송의 ‘끝’을 보여준다.
 
1편 ‘끝장드라마’에서는 “내가 니 애비다”로 시작되는 툭하면 튀어 나오는 ‘출생의 비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설정, 행복한 순간에 불치병으로 죽게 되는 주인공 등 한국 드라마 속 각종 클리셰는 다 모아놨다. 아예 아버지로 불리던 사람이 성전환한 엄마라는 설정까지 나왔다.
 
웃고 즐기는 가운데 얽히고설킨 가족관계, 선악과 빈부의 대립구도로 손쉽게 갈등을 만들어온 한국 드라마의 고질적인 문제를 꼬집었다.
 
최근 들어 SBS ‘아내의 유혹’, MBC ‘사랑해 울지마’ 등 드라마가 개연성 없는 갈등관계로 치닫고 억지 스토리 전개로 시청자들을 황당하게 하는 경우가 늘자 이를 반영한 결과다.
 
막장 드라마 속 장면 전환의 스피디함도 개그의 소재다. 마치 빠르게 감기를 하듯 사건 발생에서 문제 해결까지 뚝딱 이뤄지는 드라마의 황당한 전개는 웃음의 포인트다. 그 속에 정교하게 짜여진 스토리라인은 없다. 대신 “사실은…이렇다”는 대사 한마디로 뚝딱 해결하는 무성의한 작법은 거침없이 패러디의 대상이 된다.
 
그런가 하면 특정 프로그램을 차용, 그 속에 방송의 부정적인 측면을 녹여낸 패러디 개그도 있다.
 
‘황현희 PD의 소비자고발’에서 황현희 PD는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상대를 공격하는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 하지만 마무리는 항상 “이로써 소비자들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다.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문제점을 거듭 지적하기만 하는 황현희가 있다면 그보다 더 고압적인 태도의 안영미 박사는 이상한 궤변을 늘어놓으며 시청자들을 현혹시킨다. 나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방송인들이 많지만 허울뿐인 프로필에 실제로도 내실이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현실의 반영이다. 세상에 둘도 없는 진리를 말하듯 하는 전문가의 말은 알고 보면 결국 ‘헛소리’다. ‘헛똑똑이 박사’가 늘어놓는 궤변은 그래서 더욱 우스꽝스럽다.
 
집중해서 볼까 하면 광고가 튀어 나와 도무지 몰입을 할 수 없는 방송의 문제점을 꼬집은 코너도 있다.
 
개그맨 변기수의 뛰어난 연기력이 돋보이는 코너 ‘DJ변’에서는 한마디하고 10초짜리 음악 듣고 “광고 듣고 오시죠”로 이어지는 방송의 조급증을 그렸다.
 
청취자를 향해 독설을 퍼붓는 괴팍한 진행자, 초대한 게스트를 멀뚱하니 세워두고 때론 독설을 퍼붓는 막나가는 DJ변의 모습은 최근 ‘막장 예능’에서 볼 수 있는 독설 MC의 ‘진가’(?)를 느낄 수 있어 더욱 패러디의 재미가 산다.
 
이처럼 패러디의 중심 소재가 방송이 된 것은 흥미롭다. 한때 시사풍자 코미디가 차지했던 패러디 개그의 영역을 최근 방송 풍자가 차지한 것은 그만큼 높아진 방송의 권력과 영향력을 상징한다.
 
김원 문화평론가는 다시 패러디가 살아나는 요즘 방송가 풍경에 대해 “정치사회적인 분위기가 바뀌면서 널리 퍼진 고압적인 태도가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이라며 “그 중 방송이 코미디의 소재가 되는 것은 방송이 그야말로 큰 권력이 됐음을 방증한다”고 말했다.  
 
조민선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