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 스타들에게 인터넷은 절망을 잉태한 씨앗일까, 마지막으로 기댈 보루일까? 지난달 팀으로부터의 ‘무단이탈’ 논란의 주인공이었던 씨야의 리더 남규리는 인터넷 미니홈피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담은 글을 연이어 올렸다. 지난달 21일 게재한 “하늘도 알고 땅도 알거야. 아시죠?”라는 짤막한 문장이 시작이었다. 이 글은 짧았지만 바로 전날 전 소속사인 코어엔터테인먼트가 남규리의 행위를 ‘무단이탈’이라 도장 찍고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언론에 보도자료를 배포한 데 대한 응답이었다.
이어 26일엔 “악마와 손잡는 게 싫었을 뿐”이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돈에 얽히고 얽매이는 인생이 그 또한 하기 싫었을 뿐. 난 노래를 부르고 연기를 하고 그것뿐이었는데”라고 코어엔터테인먼트 측을 정면으로 겨냥했다. “무단이탈을 한 적도 없고 상습범도 아니었다”며 “계약기간은 끝이 났고 그냥 자유로워졌을 뿐”이라는 또 다른 글도 올렸다. 코어엔터테인먼트 측은 씨야의 또 다른 멤버인 이보람과 김연지의 입을 통해 남규리의 주장이 부당함을 주장했고, 사실상 남규리의 맞은편에 선 논란의 또 다른 당사자인 김광수 제작이사는 언론을 통해 남규리가 계약을 위반했다고 거듭 밝혔다. 양측 주장의 진위, 시비를 떠나 모양새는 유력 기획사를 운영하는 연예계 ‘큰손’과 20대 여성 연예인 개인 간의 대결이었다. 김광수 제작이사가 회사를 통해 조직적으로 대응했다면 남규리가 의존한 것은 인터넷을 통한 여론전이었다. 회사와 연이 끊겨 법적ㆍ공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연예인이 최후로 선택한 진지가 인터넷, 그 중에서도 미니홈피였던 것. 양상만으로 본다면 각 언론매체를 대국민 ‘마이크’로 활용한 검찰과 이에 대해 홈페이지 글 게재로 대응한 노무현 전 대통령 간 공방과 닮았다. 고(故) 최진실을 비롯해 정선희, 최민수, 김태희로부터 김미화에 이르기까지 연예스타들에게 인터넷이란 루머의 온상이자 악플의 진원지였다. 비뚤어진 팬심의 배설구였고 그래서 비극과 절망을 잉태한 씨앗이었다. 긍정적인 의미라곤 깜짝스타의 발굴장이거나 글 게재 수·조회 수·댓글 수가 척도인 인기 확인의 공간이라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떤 연예스타들에게는 인터넷이 새로운 공간이 되고 있다. 연예권력에 대항하는 마지막 진지이거나 세상을 향한 발언대다. 악플이라고 하면 누구 못지않게 시달렸던 신해철은 인터넷 공간의 의미를 공세적으로 뒤집어버린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아예 자신의 공식 홈페이지를 개설해 자신의 음악적ㆍ정치적ㆍ사회적 발언을 가감 없이 펼친다. 과장과 풍자에 위악적인 제스처까지 섞어 펼치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차라리 안티팬들을 낚으려는 듯 보이는 논쟁적ㆍ극단적인 주장을 통해 찬반 양론을 유도한다. 악플러들의 ‘성지’(한 번씩 들러 악의적인 댓글을 남기는 글이나 사이트)가 될 때도 있지만 매번 확인하는 것은 그를 ‘교주’ ‘마왕’이라 부르는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다. 이런 팬들은 물론 교주나 마왕이 주장하는 내용의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인터넷을 팬들과 일상의 감성을 교류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모범적인 사례로는 배우 김지수의 블로그가 있다. 2005년 ‘여자, 정혜’ 개봉을 전후해 일종의 홍보용으로 만들었던 것을 끊지 않고, 이제는 개인용 블로그로 운영하고 있다. 그냥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용히 나누는 곳으로 팬들의 방문과 반응이 꾸준하다. 때로 수백 개가 달리는 댓글에는 악플을 찾아보기 어렵고 따뜻하고 친근한 대꾸가 많다. 인터넷은 누구나 아는 대로 양날의 칼이고 독이자 약이다. 연예인에겐 ‘사방이 자신을 겨눈 적진’일 수도, ‘든든한 지원군의 바다’일 수도 있다. 다행인 것은 차츰 위로와 치유, 공감과 교류의 장으로서 싹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울증 바이러스의 진원지가 됐던 인터넷이 백신 혹은 치료제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형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