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박쥐의 두 배우 ‘송강호’ ‘김옥빈’

“파격 노출? 딱 하루 고민”

사제 현상현役  송강호

아내도 두말않고 동의
날 믿어준 그녀 ‘연기의 원천

“당근이죠.”
 
엄숙하고 성스러운 가톨릭병원 안, 죽음이 임박한 환자가 절박한 목소리로 자신의 선행을 하느님이 기억하겠느냐는 질문에 현상현 신부는 나지막이 말한다.
 
영화 ‘박쥐’ 속 송강호의 첫 대사는, 뱀파이어를 소재로 한 이 어두침침한 영화에 바짝 긴장한 관객을 한순간에 무장해제시킨다. 편안한 눈빛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내뱉는 그의 한 마디에 관객들은 안심하고 조용히 영화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명실 공히 최고의 배우 송강호의 연기에 관객이 몰입하는 순간이다.
 
“가장 어려운 대사였어요. 이 한 마디로 영화 전체적인 느낌이 결정되니까요.” 처음 시나리오엔 “그럼요”였다. “촬영 전, 리딩할 때 박찬욱 감독이랑 상의해서 바꿨어요. ‘그럼요’는 처음 보는 환자에게 하는 말이지만 ‘당근이죠’는 이미 익숙한 사람끼리 하는 말이잖아요. 상현이라는 신부가 어떤 봉사활동을 하는지 설명되고, ‘선입견’ 없이 이 영화를 처음부터 편하게 보게 만들기도 하죠.”
 
‘선입견’, 그에겐 어울리지 않는 단어다. 그가 나온 영화는 ‘믿음’이라는 암묵적 동조 아래 보게 된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 역할을 맡은 송강호는 죄와 구원이라는 인간적 딜레마에 빠진 ‘현상현’이라는 인물을 참 그답게 연기해 “당신은 역시 당근 최고야”를 내뱉게 한다.
 
“딱 하루요.”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언론을 뜨겁게 달군 건 그의 성기 노출 장면이었다. 박 감독에게 그 장면에 대한 제안을 받고 결정을 내리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 하루.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장면은 지극히 자연스럽고 꼭 들어맞는다는 생각 하나였다.
 
“가장 강렬하면서도 중요한 표현이에요. 상현의 육신은 마지막에 불타 죽지만 상현의 영혼은 그 순간 소멸됐다고 봅니다. 일종의 순교죠. 최악의 인간이 최악의 순간으로 사라지는 것이 뭉클했고, 숭고한 느낌마저 들었어요.”
 
인간에게 가장 부끄러운 부분의 노출마저 감행하며 이 영화를 찍은 데에는 감독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송강호와 박찬욱은 거의 매일 얼굴도장을 찍을 만큼 친숙한 사이지만, 사석에서도 그는 박찬욱을 “감독님”이라고 부른다. ‘친밀함’만으로는 부족한 ‘감독’ 박찬욱에 대한 존경심이 힘들게 결정할 장면을 당연한 것으로 만들었다.
 
“참 고맙죠.”
 
‘박쥐’를 찍으며 그가 가장 고마워한 사람은 아내다. 영화 시사회가 끝나고 제일 먼저 문자를 보내온 게 아내였다. 이례적이었다. 보통은 선ㆍ후배에게서 휴대전화 문자가 쏟아지고 가장 마지막으로 아내와 통화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파격적인 노출에 대한 동의를 구했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남편을 믿어줬다. 혹여 쑥스러워할까 미리 선수를 치며, 남편이 아닌 배우로서 송강호의 연기에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이 영화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지지가 곧 송강호 연기의 원천임이 느껴졌다. 인터뷰를 마칠 때쯤 기자도 그의 아내가 참 고마워졌다.
  
정지연 기자

 

“한국영화 신종이래요”

친구아내 태주役 김옥빈


 관능미·사탄의 매혹 발산
 본능 주체못하는 ‘야성 DNA’
“변화무쌍한 이 역할 딱이죠”

2005년 ‘여고괴담 4: 목소리’로 데뷔할 때만 해도 열아홉 살의 김옥빈(23)은 어리다는 사실 빼고는 모든 게 평범했다. 운동에는 능했지만 유단자까진 ‘과장’이었다.

4년 후 김옥빈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에 출연함으로써 모든 것이 특별한 여배우가 됐다. 심지어 콤플렉스였던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부터 ‘기형적으로’ 커다란 손과 발마저도…. 박찬욱은 “너무 안정되고 틀이 잡히기보다는 보는 사람을 불안하게 만드는 면이 보였고, 변화무쌍한 면이 이 역할에 잘 맞았다”며 “한국 영화에 없던 새로운 종자”라고 말했다.

사실 김옥빈은 여배우들의 최고 등용문인 ‘여고괴담’으로 주목받으며 일견 ‘화려하게’ 시작했지만 폭삭 망한 작품(‘다세포소녀’)도 있었고,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발언으로 안티팬도 적잖게 생겼다. 마치 전성기와 침체기를 다 겪어본 스타 같지만 신인에 더 가까운, 이제 갓 5년차 배우다. 
 
“무난하지 않아서 더 좋아요. 똑바로 가면 재미없잖아요? 주위 분들이 저한테 지켜보는 재미가 있다고 하세요. 제가 ‘똥고집’이 만만치 않거든요. 욕먹을 짓도 있었고…. 배우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광고 들어와도 콘티가 마음에 안 든다고 싫다 우기기도 하니…. 하하.”
 
김옥빈이 연기한 ‘태주’는 영화의 원작 소설인 에밀 졸라의 소설 ‘테레즈 라캥’의 주인공인 테레즈로부터 이름도, 성격도 빌려왔다. 라 여사(김해숙 분) 집 셋방에 살던 아버지가 버려두고 간 자식. 라 여사에 의해 거둬 키워졌고 라 여사의 병약한 아들 강우(신하균 분)와 결혼한다. 시키는 대로 하고 제대로 짖어보지도 못한 애완견으로 자랐지만, 암늑대의 본능을 갖고 있는 여인이다.

뱀파이어가 된 신부 상현(송강호 분)과 강우, 라 여사, 태주가 모두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만나는 병원 장면. 삶을 포기한 자 특유의 초점 잃은 눈빛과 무표정한 얼굴에 육질의 관능과 사탄의 매혹을 담아낸다. 극 중 김옥빈은 “난 부끄러움 타는 여자 아니에요”라며 옷을 벗고, 신부는 여자의 몸 때문에 타락한다.
 
“주위에서들 야생마 같다고 하세요. 놀게 풀어놔야지, 가두려고 하면 안 된다고. 고삐 풀린 망아지 같죠, 뭐.”
 
그래도 무서운 건 무서웠다. 5층 높이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장면 촬영을 위해 지상으로부터 와이어에 묶여 들려 올라갈 때는 ‘미친 짓’이라는 생각도 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태주의 순수하고 귀여운 모습에 끌렸다”는 김옥빈은 태주라는 여인을 “지치고 억눌린 모습을 보이다가도 떼를 쓰기도 하고 나중에는 남자를 지배하려고 하는 인물”이라고 읽었다.

‘다세포소녀’를 같이했던 정정훈 촬영감독 추천으로 지난해 말 박찬욱 감독을 만났으며, 마침 그날이 자신의 생일이었다. 박 감독은 ‘TV에서 봤던 연예인을 보는 신기한 느낌’으로 다가왔고, 첫 자리에서는 영화와는 상관없는 수다로 몇 시간을 보냈다. “여성 스태프 사이에 있으면 남자라고 못 느낄 정도로, 사근사근하고 점잖고 여성적인 분”이라고도 박 감독에 대한 인물평을 달기도 했다.
 
전남 순천에서 3녀 중 장녀로 태어난 김옥빈은, 태주처럼 숨겨진 ‘본능’을 깨워가고 있다. 한때 경찰이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아보니 초ㆍ중ㆍ고교 내내 연극반에 있었다. 자기를 표현하고픈 욕망에, 평범하고 정상적인 것을 벗어나고픈 ‘야성의 DNA’야말로 김옥빈이 ‘박쥐’에게 내준 피일 것이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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