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들이 ‘애드리브’를 알아?

캐릭터 이해·분석은 기본, 작품에 생명력 선사
억지 개인기는 되레 역효과

#1 “밥은 먹고 다니냐?” (영화 ‘살인의 추억’ 中) 영화의 마지막 장면, 송강호가 뱉은 대사는 관객들에게 영화의 핵심을 관통하는 찌릿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성공한 명대사다.

#2 “홍도야 우지마라. 아글씨, 오빠가 있다.” (드라마 ‘아들과 딸’ 中) 벌써 17년이나 흘렀지만, 마치 현재 유행어인 양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걸쭉한 엇박의 ‘아글씨’도 40년차 배우 백일섭의 내공을 여실히 보여준 명대사다.

#3 “줄을 서시오” (드라마 ‘대장금’), “홍춘이, 내 맘을 받아주게”(드라마 ‘허준’) 코믹연기의 대가 임현식은 고도의 유머감각과 캐릭터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버무려 맛깔 나는 명대사를 탄생시켰다.


이들 명대사의 공통점은? 대본에 없는 대사라는 것, 즉 현장에서 배우의 기지를 발휘해 만든 즉흥 애드리브다. 애드리브(ad lib)는 ‘임의로’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 ‘ad libitum’의 준말로, 주로 재즈의 즉흥적인 독주나 영화 연극 공연 등에서 배우가 대본에 없는 대사를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방송 3사를 통틀어 로맨틱 코미디 물이 인기를 끌면서 애드리브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손현주(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 김선아(SBS ‘씨티홀’), 황정민(KBS 2TV  ‘그바보’), 최철호(MBC ‘내조의여왕’) 등은 대본에 충실하되 그 외의 재미를 이끌어낼 만한 감칠맛 나는 표현력으로 대본의 맛을 살리는 배우들.
 
드라마뿐 아니라 개그콩트에서도 애드리브 명대사가 있다.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KBS 2TV ‘개그콘서트’ ‘분장실의 강선생님’의 강유미가 뱉는 “니들이 고생이 많다”는 원래 대사에 없던 애드리브가 뻥 터진 것. 기본적으로 현장성과 의외성 등이 재미의 요소인 희극에서 애드리브는 작품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일등공신이다.
 
백일섭, 임현식, 송강호 등은 애드리브 연기의 대가로 유명한 배우들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를 ‘즉흥연기’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작품의 성격과 배우의 캐릭터 등 전체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작품의 분위기를 한껏 살리는 애드리브는 고도의 캐릭터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연습에서 나오는 알짜 연기이기 때문이다.
 
감초 연기의 대가 배우 임현식은 대본을 받을 때마다 빨간 줄을 그으며 여백이 없을 정도로 주석을 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수없이 반복된 대사연습과 40년 가까운 연기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애드리브는 그야말로 농익은 경험의 값진 결과물인 셈이다.
 
애드리브 연기가 빛을 보는 배우는 따로 있다. 순간의 순발력과 유머감각 등 타고난 재능형 배우들도 있지만, 대부분 ‘애드리브를 잘한다’는 평을 듣는 이들은 맡은 배역에 대한 캐릭터는 물론 디테일한 부분까지 철저히 계산하는 분석형 배우들이다.
 
대표적으로 송강호는 애드리브를 구사하는 원칙이 분명하다. “밥은 먹고 다니냐?”(살인의 추억), “아름답다, 아름다워’(우아한 세계) 등 애드리브로 숱한 명대사를 만들어낸 그였지만, 얼마 전 개봉한 영화 ‘박쥐’에서는 애드리브를 절대 하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나리오의 대사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 (박쥐는) 그렇게 해야 ‘진맛’이 사는 영화”라고 했다. 작품마다 언어를 구사하는 방식이 다른데 ‘살인의 추억’이나 ‘우아한 세계’는 애드리브가 작품을 살리는 스타일이고 ‘박쥐’나 ‘밀양’은 애드리브가 작품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렇듯 애드리브는 장르에 따라서 작품의 느낌과 의도에 따라 다르게 구사해야 하는 조심스러운 무기다. 설익은 애드리브를 구사할 경우, 작품에 해가 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애드리브 연기는 아무나 할 수 없고, 또 아무에게나 허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인정받은 연륜의 배우들이 아닌 신인급 배우들이 애드리브를 구사한다면, 현장에서 혼쭐이 난다. 끼 많고 혈기 왕성한 ‘초짜’ 배우들이 범하기 쉬운 실수가 바로 자신만의 감정에 취해 개인기를 선보이는 경우다. 한 방송 관계자는 “대사를 구성하는 수많은 단어 중에 애드리브를 쓰느냐 마느냐는 정말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만약 상대가 애드리브를 받아치지 못하면 전체 신에 피해를 끼친다. 본인이 튀려다 상대에겐 피해를 주는 이기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감정에 취해서 단순히 웃기려고 하거나, 애드리브를 통해 엉뚱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거나 작품의 포인트를 이동시키는 건 옳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잘 쓴 애드리브는 장면의 의도와 캐릭터를 망치지 않고 전체적인 작품 색채와 조화를 이루는 경우를 말한다. 좋은 배우는 지문 하나도 쉽게 흘리지 않고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KBS 2TV ‘솔약국집 아들들’의 제작진은 “좋은 애드리브는 자신의 개인기에 의존하지 않고 극중 캐릭터에 충실하면서 나온 한발짝 더 나아간 어떤 것”이라며 극중 솔약국집 아버지로 나오는 배우 백일섭의 애드리브에 대해 “대본에 지문 한 마디 쓰여 있을 뿐인데, 중간중간 대사를 넣어가며 장면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은 맡은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한 배우의 내공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조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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