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훔치고… 봉하마을 평온 되찾다

[김해=윤정희·김상수·백웅기·서경원 기자]

봉하마을이 평온을 되찾았다. 분노 섞인 눈물과 함께 고성과 몸싸움이 오갔던 봉하마을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나흘째인 26일 평정을 되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방문한 추모객과 함께 분향소는 이날 내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추모를 이어갔다.
 
자원봉사자의 따뜻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25일 밤과 26일 새벽 봉하마을은 낮보다 더 많은 인파가 모인 가운데 엄숙한 침묵이 흘렀다. 시민은 퇴근 후 바로 봉하마을 행을 재촉했다. 행렬이 길어지자 5명씩 분향하면서 간격을 좁혔지만 행렬은 끝이 없었다.
 
전수미(여ㆍ40) 씨는 “퇴근하고 나서 아이들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함께 방문했다”고 말했다. 창원에서 부모와 함께 온 이종화(14) 군은 “본받고 싶은 대통령이었다. 좀 피곤하지만 꼭 추모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근 공장에서 일을 끝내자마자 봉하마을을 찾은 허범(34) 씨는 작업복도 갈아입지 못한 채 추모 행렬에 동참했다. 한참을 묵묵히 서 있던 그는 “꼭 조문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 뒤 눈물을 참는 듯 고개를 숙였다. 이날 역시 추모객이 남긴 촛불 행렬이 마을까지 이어져 어두운 추모길을 밝게 했다.
 
정치권 인사의 조문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일부 노 전 대통령 지지자도 차분한 분위기를 되찾았다. 정치권 인사가 방문할 때마다 곳곳에서 “돌아가라”를 외치던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었다.
 
노무현을사랑하는사람들의모임(노사모)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고 이미 대부분 정치권 인사가 봉하마을 방문을 마쳤기 때문에 굳이 고성이 오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했다. 이들은 차분히 추모행렬 안내와 질서유지에 힘썼다. 다만 노 전 대통령의 서울 영결식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래도 수긍하는 분위기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이 대통령이 봉화마을을 찾는 게 가장 좋은 방안이지만 서울에도 분향소가 있기 때문에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하루 20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찾을 만큼 많은 인파가 봉하마을을 찾고 있지만 별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일부 추모객이 탈진 증상을 호소한 것을 제외하고는 순조롭게 추모가 진행됐다. 응급센터 관계자는 “날씨도 덥고 워낙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등을 염려했지만 지금까지는 무사히 장례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추모객의 질서의식도 돋보였다. 추모객은 자발적으로 길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줍는가 하면, 수킬로미터에 달하는 행렬을 기다려야 하는 데도 작은 다툼 하나 발생하지 않았다. 가져온 쓰레기를 다시 담아가는 모습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자원봉사자 인원은 정확히 파악하기 힘들다. 추모객이 순간 자원봉사자가 되기도 하고 말 없이 일손을 돕다가 말 없이 사라지는 사람이 상당수다. 자원봉사자 접수를 받고 있는 한 관계자는 “추모를 왔다가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이 하루 150~200명에 이른다”며 식당에 70여명을 비롯해 전체 필요한 인원이 300여명이 되는데 추모객이 자발적으로 일손을 돕고 돌아가 총인원을 파악하는 게 ‘무의미’하다”고 했다.
 
추모객을 안내하고 있는 한 자원봉사자는 “새벽에도 70~80명은 항상 분향소를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임시 숙소에서 돌아가며 새우잠을 자고 있다”면서도 “노 전 대통령 마지막 길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고 싶다”며 다시 분주하게 손길을 움직였다.
 
다만 경찰의 봉하마을 차량 통제에 추모객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30도에 이르는 무더운 날씨 속에 1~2㎞를 걸어야 하기 때문. 특히 아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추모객은 추모의 슬픔 마음에 아이 건강 염려까지 추모길 근심이 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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