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모성…그 누가 돌을 던지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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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누명 쓴 아들위한 엄마의 사투 도덕적 불편함 느낄수도

산 거라면 파리도 못 죽일 자식, 좀 모자라지만 한없이 예쁘게 생긴 20대 아들(원빈)이 소녀를 끔찍하게 살해했단다. 아들은 그날 밤 일을 기억도 못한다. 그럴리가 없다고 아니라고 해봐야 변호사는 돈만 밝힌다. 경찰은 아들에게 수갑을 채우고 사건을 덮었다. 아들과 어울려 다니며 나쁜 일에 꼬드겼던 친구(진구)가 말한다. “왜 소녀의 시체를 온 동네가 다 내다보이는 곳에 걸어놓았겠어? 범인이 말하고 싶었던 게 있던 거지. 동네 사람 아무도 믿지 말고 어머니가 직접 범인을 찾아봐.” 엄마의 사투가 시작된다. 직접 증거를 모으고, 범인을 찾아 나선다. 그리고 마주하는 충격적 진실들. 관객의 감정은 철저하게 어머니(김혜자)의 감정을 따라간다.

처음엔 무기력하고, 그 다음엔 측은하다. 공포에 떨었다가 분노가 폭발한다. 진짜 범인을 미칠듯이 잡고 싶었다가는 그 다음엔 죽이고 싶어진다. 남는 것은 하염없는 슬픔이다. 누가 이 가여운 어미에게 돌을 던지랴.
 
‘어머니’는 윤리고, ‘어미’는 본능이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어미의 윤리’를 다룬다. ‘어미’의 본능과 세상의 율법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빚어진 드라마는 격하다. 정서는 압도적이다. 영화는 ‘아들의 살인누명을 벗기려는 엄마의 사투’, 단 한 줄로 요약되지만 거대한 격랑은 어미의 싸움이 끝나는 바로 그곳에서 일기 시작한다. 영화의 오프닝, 기괴하고 낯설었던 어머니의 춤은 엔딩에서 서러운 살풀이가 돼 관객의 가슴에 깊은 파문을 남긴다. 봉준호의 네 번째 장편영화 ‘마더’는 그가 더이상 재기 넘치는 젊은 작가이거나 대중영화를 잘 만드는 흥행감독이 아니라 거장의 시선과 호흡을 갖춘 감독이라는 사실을 입증한다. 봉 감독을 21일 서울 용산의 한 식당에서 만났다.
 
-김혜자 씨와 만나 출연 제안을 한 것이 5년 전이라고 하던데.

▶’살인의 추억’ 개봉 당시 여러 인터뷰에서 김혜자 선생님과 영화를 찍고 싶다고 했다. 기사에서 ‘봉준호, 누구누구에게 러브콜’, 이런 보도가 나올지 모르니까 영화사에서 가령 전지현 같은 배우와 작업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말라는 당부도 있었지만, 정말 같이하고 싶기도 했다. 당시 백지연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백지연 씨가 “김혜자 선생님이 기사 읽은 것 같더라. 젊은 감독이 같이하고 싶다고 하니 신기해하시더라”며 전화번호를 가르쳐줬다. 그렇게 2004년 초 김 선생님 연희동 자택에서 만났다. ‘살인의 추억’이 프랑스 영화같다며 좋았다고 하시더라. 이미 그때 영화 스토리는 짜여져 있었지만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씀 드린 건 2005년이었다. 긴장 많이 했다. 워낙 충격적인 내용이니까. 하지만 김 선생님도 ‘국민엄마’라는 이미지가 영광이지만 한편으로는 얼마나 스트레스겠나. 선생님이 스토리를 만족해하셨다.
 
-이번에는 관객에게 도덕적인 불편함을 던져준다. 전작에선 보이지 않았던 모습인데.

▶후반 30분은 이미 2004년 다 구상했던 그대로다. ‘살인의 추억’이나 ‘괴물’의 성공 때문에 관객에 따라선 불편할 수 있는 이번 영화를 만든 건 아니다. 영화를 편집할 때 애엄마들을 불러서 모니터한 적이 있는데, 다들 “나라도 그러겠다”고 하더라. 한 관객은 어제 시사회를 보고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영화내용을 말씀드리고 만약 그런 처지가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여쭤봤더니 “아유 어쩔겨, 그렇게라도 해야지”라고 답했다고 하더라. 김 선생님은 영화를 처음 보시고 “이 엄마는 짐승같다”고 하셨다는데,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행위는 도덕적 잣대를 벗어나 있다. 광기와 히스테리에 싸여 짐승이 되지만 누가 돌을 던질 수 있겠나.
 
-이번 영화에서도 소녀가 죽는다. 당신의 영화에선 늘 사회나 권력이 가장 무기력한 존재인 소녀를 보호하지 못한다. 늘 비판적인 사회관이 투영되는데, 전형적인 중산층 집안에서 성장했다는 사실에 비춰보면 언뜻 납득되지 않는 태도다(봉 감독 아버지는 미대 교수 출신의 중견 화가, 누나와 형은 모두 대학교수다. 또 외조부가 소설가 구보 박태원이다).

▶나도 몰랐는데, 어느날 돌이켜보니 정말로 세 작품째 연속으로 교복입은 여학생이 죽더라. 글쎄 사회에 비판적이라기보다는 내 속에 사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가 있는 것 같다. 온실 같은 중산층 집안에서 자랐으니까 오히려 바깥세상으로 한 발 내디디면 추락할 수 있다는 공포감이 더 컸던 것이 아닐까. 우리 집안도 여느 가정과 다르지 않게 복잡한 사연도 있고 히스테리컬한 문제도 있다.
 
-다음 작품은.

▶다음달부터 프랑스 만화 원작의 ‘설국열차’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할 예정이다. 원작에서 뼈대와 설정만 빌려온다. 아직 인물 배치가 끝나지 않았다. 그 다음 작품도 구상 중이다. 내용을 말하기 어렵지만 김혜자 선생님과 같이하기로 했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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