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표류 김씨…방구석서 표류하는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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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을 아시는지. 서강대교 밑 여의도의 새끼섬같은 곳. 그냥 지나치면 평생 그 이름 부를 일도, 가볼 일도 없는 서울 속 외딴 섬. 군중 속에 살지만 문득문득 외로워지는 우리같은 존재가 아닐까.
 
이 곳에 한 사내(정재영)가 한강물에 떠밀려 들어온다. 남산 위에서 돌 던지면 십중 팔구 맞게 된다는 성씨, 김씨다. 자살을 하려고 다리 위에서 떨어졌지만 죽지도 못했다. 정신 차려 보니 밤섬의 모래밭이다. 무슨 사연때문에 모질게 목숨까지 끊으려 했을까. 알고 보니 그 사연이란 게 성씨만큼이나 흔하다.
 
직장에선 능력 없다고 쫓겨났고, 돈없으니 빚을 냈는데 그게 눈덩이처럼 불었다. 지지리도 못난 남자가 싫었던 여자친구는 차갑게 돌아섰다. 오늘도 신문 한 구석에 빼꼼히 얼굴을 내민 수많은 김씨, 이씨, 박씨의 사연 중의 하나다.
 
눈을 떠보니 밤섬. 물에 젖은 몸은 차갑고, 배터리 닳은 휴대폰은 불통. 자살해야겠다는 마음은 어디갔는지 잠깐 큰일났다 싶었지만 돌이켜 생각하니 이보다 더 편할 순 없다. 영업해오라고 채근하는 상사도 없고, 돈 안 갚으면 매장시키겠다고 위협하는 채무자들도 없다. 이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톰 행크스의 배구공 ‘윌슨씨’ 대신 깡통 ‘오뚜기’씨를 벗삼아 오리 잡고 붕어 낚아 살아가기로 한다.
 
아무도 모를 줄 알았지만, 이 사내의 일거수 일투족을 시야에 포착한 한 여자가 있었다.
 
그 여자도 김씨(정려원). 도시 속 또 하나의 섬, 아파트 몇 평 방안에 스스로를 가둬 두고 사는 인물이다. 이 여자는 또 무슨 사연을 갖고 있을까. 관객은 짐작만 할 뿐이다. 그여자의 이마에 난 커다란 상처와 외출 때면 늘 뒤집어 쓰는 오토바이 헬멧으로.  컴퓨터 앞에 앉아 인터넷에서 근사한 미녀의 사진을 찾아 자신의 미니홈피를 꾸미는 일 하나로 소일하는 은둔형 외톨이. 취미라곤 망원 렌즈가 장착된 카메라로 아주 가끔, 바깥 풍경 사진을 찍는 것.
 
어느날 그녀의 뷰파인더에 남자 김씨의 모습이 포착된다. 여자 김씨는 장난처럼 병에 쪽지를 담아 밤섬으로 흘려보내고, 남자 김씨는 모래밭에 글씨를 써 화답한다. 도시 속 각자의 섬에 스스로를 감금한 두 외톨이들이 “세상 속으로” 구출될 수 있을까.
 
영화에서 먼저 관객들의 시선을 잡아채고 웃음을 자아내는 것은 정재영의 ‘무인도 정착기’다. 떠내려온 오리배로 잠자리를 마련하고, 각종 쓰레기와 고물들을 생활용품으로 활용하는 장면들은 어릴 적 ‘로빈슨 크루소’나 ’15소년 표류기’ 등을 읽으면서, 톰행크스의 영화 ‘캐스트어웨이’를 보면서 한번쯤 꿈꿔봤던 무인도에 대한 로망을 떠오르게 한다.
 
자살을 다시 시도했다가도 불현듯 찾아온 설사나 얼떨결에 맛본 ‘사루비아꽃’의 꿀에 생의 의지를 다시 확인하는 장면은 뭉클하다. ‘원맨쇼’에 희비극을 교차시키는 정재영의 존재감이 크다.
 
정려원은 이리 저리 뻗친 머리 매무새와 얼굴에 잔뜩 드리운 그늘에도 불구하고 여리고 따뜻한 웃음을 숨긴 여자 역할로 정재영과 매끄러운 호흡을 보여준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공동연출하며 가능성을 인정받았던 이해준 감독은 아주 작은 이야기들과 아주 낮은 목소리, 아주 사소한 소품들로 미소와 눈물을 자아내는 솜씨를 입증했다. 소박하지만 따뜻하고 경쾌한 영화다.
  
이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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