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의 ‘아름다운 행진’


▲ MBC드라마 ‘선덕여왕’의 소화 역 서영희
 
ⓒ2009 Koreaheraldbiz.com

어수룩하다. 두서없이 말을 풀어내는데, 듣는 사람은 답답해서 가슴을 친다.
 
그런 소화(서영희)가 훗날 선덕여왕이 될 덕만을 업고 먼 서역 땅까지 도망친다. 미실이 보낸 첩자와 사투를 벌이고, 덕만을 살리려 스스로 모래더미 속으로 파묻혀 들어간다. 
 
‘그저 바라보다가’(KBS2)의 구동백은 헤벌쭉 웃는다. 잇속을 차릴 줄 몰라 늘 손해만 보는 그는 ‘생판남’인 한지수를 위해 가짜 결혼도 불사한다. ‘흐흐허허’하는 웃음소리로 실소를 머금게 하는 송대풍. ‘솔약국집 아들들’(KBS2)에 등장하는 그는 외상약을 안고 도망가는 할머니에게 되레 손을 흔들어준다.

이만하면 ‘바보들의 행진’이라할 만하다. ‘찬란한 유산’의 자폐아 동생인 고은우(연준석), ‘남자이야기’의 안경태(박기웅), ‘아내의 유혹’의 하늘(오영실), 영화에선 ‘마더’의 원빈도 바보 행진에 발을 보탰다.
 
과거 바보 캐릭터는 어설픔을 무기로 세태를 비판했다. 70년대 드라마 ‘여로’에서 ‘땍띠야(색시야)’를 외치던 장욱제는 브라운관에 바보 캐릭터를 본격적으로 소개했다.
 
한치의 비판도 허용되지 않던 80년대 초반, 이주일은 과장된 몸짓과 표정으로 극단적인 바보스러움을 표현했다. 80년대 후반에는 최양락 김형곤 등이 ‘네로 25시’ ‘회장님 회장님’ 등에서 당시 군부정권을 혹독하게 비꼬기 시작했다. 2005년 영화 ‘마라톤’의 성공을 기점으로 스크린에 바보 캐릭터가 전성기를 맞았다. ‘허브’ ‘바보’ ‘대한이, 민국씨’ 등에서 바보가 주연으로 등장했다. 소화, 구동백, 송대풍처럼 바보가 드라마에서 주연급으로 급부상한 것은 최근 일이다.
 
요즘 바보는 약자에 대한 연민, 또는 서민을 상징한다. 세태 비판은 자유로워졌지만, 정치·경제적으로 여전히 불안한 사회에서 국민은 바보와 자신을 쉽게 동질화한다.
 
봉준호 감독은 “내 영화의 주인공은 늘 약자다. 어수룩한 형사, 바보 아들을 키우는 홀어머니 등을 보면서 관객은 공감을 얻는다”고 말했다. 영화 ‘마더’에서 모성애 속으로 숨고 싶어하는 것은 바보 역할을 맡은 원빈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각박한 현실에서 바보 캐릭터가 현대인에게 때묻지 않은 감동을 준다는 시각도 있다. ‘그저 바라보다가’의 기민수 PD는 “‘그바보’는 서민적 시선에서 일상을 바라본 드라마”라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아날로그적 희귀 인물인 구동백이 시청자에게 즐거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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