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삼스럽지만 6월 25일은 한국인에게 운명의 날이다. 그 비극적인 전쟁 발발일에서 비롯된 민족과 국가, 그리고 국민 개개인의 운명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일대 변환을 일으켰다. 엊그제가 61주년. 세월의 수레바퀴는 전쟁기념일에도 회갑을 덧씌운다. 한-슈나이더 국제어린이재단(Han-Schneider International Children’s Foundation /www.han-schneider.org)의 설립자겸 대표인 한상만씨는 1950년 12월의 한강다리 위를 떠올린다. 귀청을 찢는 폭음소리와 동시에 아득한 적막이 잠깐 흘렀다. 정신을 차려보니 곁에 있던 식구들이 없다. 주변은 피투성이가 된 채 신음하는 사람들, 아무렇게나 나뒹구는 시체들로 아수라장이 돼 있을 뿐이다. 매캐한 포연으로 뒤덮인 한강다리 위에서 봇짐을 진 6살 까까머리 소년은 널부러진 시체에 걸려 넘어지고 피난행렬에 채여 고꾸라지면서 눈물 콧물이 범벅된 얼굴로 “엄마~!” “아부지~!”를 외쳐댔다. 허사였다. 전쟁고아라는 운명의 올가미가 씌워진 순간이다. 61년이 지난 오늘, 한씨는 또 다른 고아들을 돌본다. 탄자니아와 캄보디아같은 빈곤한 나라의 고아들과 기아에 허덕이는 북한내 44개 고아원의 동포 어린이들 ,그리고 무엇보다 북한을 빠져나왔다가 제3국에 버려진 탈북아동들이 그가 3년여전 전재산을 털어넣어 HSICF를 설립하게 만들었다. “전쟁고아였던 내가 미국인 가정에 입양되는 행운과 혜택을 받아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만큼 불행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을 위해 사는 것이 내 운명이 된 것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지만 한씨는 언제 세상을 떠나게 될 지 모르는 이른바 ‘시한부 생명’이다. 지난 2002년 골수암 판정을 받고 잘해야 2~3년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스탠포드대 MBA출신으로 세계적인 화학제품기업 듀퐁을 거쳐 무역회사를 차려 재산을 모았던 한씨는 얼마 남지 않은 생을 그의 양부 고(故) 아더 슈나이더 박사가 양아들인 자신에게 베풀었던 은혜와 뜻을 되살리면서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북한을 방문했던 1995년에 접했던 동포 어린이들의 영양실조에 빠진 얼굴이 늘 가슴 한구석에 짐으로 남아 있던 것도 봉사를 통해 삶을 마무리하겠다는 결심에 작용했다. 돌이켜보면 전쟁고아로서 미국에 입양된 자신은 기적같은 행운을 온몸으로 만끽한 셈이었다. 한강다리에서 부모를 잃고 피난행렬을 따라 무작정 남쪽으로 걸었던 여섯살 소년은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허름한 초가집에 들어가 먹을 것 좀 달라고 애원한다. 찐 감자 두개를 게눈 감추 듯 먹어버린 소년이 측은했으리라. 헛간처럼 비좁은 방에서 여섯식구가 비비고 자는 그 농가의 주인은 거지나 다름없는 고아 소년을 하룻밤 자고 가도록 인심을 베푼다. 충남 청양군 사양면 싸리골의 그 농가는 그로부터 6년 동안 소년이 초등학교까지 다니게 된 집이 돼주었다. 한씨가 꼽는 자신의 인생에 일어난 첫번째 기적이다.
서울대병원을 찾아갔지만 입구에서 경비원에 막혀 실랑이를 하던 중 미국인 의사의 손에 이끌려 슈나이더 박사를 만나게 된다.한씨의 두번째 기적이었다. “당시 서울대 재건사업을 돕기 위해 파견나와 있던 슈나이더 박사는 내게 병원 일자리를 알선해주고 학교공부까지 시켜주더니 열여섯살 되던 해 함께 미국으로 가자고 했다. 기적같은 일 아닌가.” 그러나 슈나이더 박사는 미혼이었다.그때만 해도 미혼인 사람이 입양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슈나이더 박사는 당시 집권 민주당의 실세이던 휴버트 험프리 상원 부총무와 대학동창으로 절친한 관계이던 친형(얼 슈나이더)에게 부탁, 특별법을 청원했다. 1961년 2월 28일 험프리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안에 존 F.케네디 대통령이 서명함으로써 한씨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미혼 양부에 의해 입양된 사례가 됐다.세번째 기적이다. “골수암 진단을 받고 9년째 살고 있는 것, 그래서 고통받고 있는 고아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것까지 모두 제 인생에 나타난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한씨는 현재 탈북아동을 미국 가정에 입양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안 S3156과 HR4986이 연방 의회에서 통과될 수 있도록 발 벗고 뛰고 있다. 새뮤얼 브라운백 연방상원의원(공화·캔자스)과 에드 로이스 연방하원의원(공화·캘리포니아)이 상정한 특별법안이 올해 안에 통과될 수 있도록 지지서명운동을 펼치는 한편 백악관 등 관계요로에 입법로비를 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법안 통과를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의 얼굴엔 화색이 가득하고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요즘처럼 하루 하루가 행복하고 즐거운 적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이들을 위해서 산다는 게 아주 조이풀(Joyful)하다.”라는 한씨는 “내 몸이 낫게 해달라는 기도는 하지 않는다.세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단 한명의 인생이라도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할 뿐”이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한씨는 자신의 삶을 이끈 ‘다섯번의 기적’을 제목 삼아 자서전을 집필하고 있다.그 초고의 서문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온 9년의 세월을 통해 죽음이란 무질서한 내 인생에 질서를 잡아주고, 불타는 욕망에 진실을 찾아 주었으며, 메마른 일상에 삶의 가치를 깨닫게 해준 행복의 문이라고 고백하고 싶다. 현재 죽음이 내 몸 안에서 커가고 있지만, 나는 내 생에 최고의 행복을 맛보며 살고 있다. 골수암 말기의 사형 선고는 내 생애 또 다른 기적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이자 축복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을 통해서 나는 다시금 하나님 품에 안길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보내신 존재의 이유들을 다시금 깨달았기 때문이다…’ 황덕준/발행인겸 대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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