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칼럼] 솔직한 폭군이 낫다

“경영이란 게 사람들의 상처를 보살펴주고 치유해나가는 과정이 아닐까…요즘 그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며칠전 점심을 같이한 어느 은행장은 그렇게 혼잣말처럼 화두를 던졌다. 가볍게 점심을 나눈 시간에 거론하기엔 다소 무거운 주제였지만 이쪽도 명색이 신문사 경영을 한답시고 나대는 처지인지라 대꾸할 수 밖에.

 

“이 세상에 경영인 수 만큼이나 경영에 관한 레토릭이 많긴 하지만 상처를 고쳐주는 과정이라니…. 좀 생소하고 어려운데요.”

 

인간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거다. 정신이든 물질이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없던 것을 끊임없이 채워나가기 보다 가진 것을 잃고, 빼앗기게 마련 아니냐는 게 그 행장의 전제였다.

“기업경영에서 모티베이션이라는 게 따지고 보면 상처 받은 사람들의 부정적인 가치관을 긍정적으로 끌어내는 힘이 생기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밑줄 좌악 그을 만한 명강의를 덧붙이는 것이었다.

 

규모의 크고 작음과 무관하게 조직을 꾸려나가다 보면 본의든 아니든 오히려 상처를 주는 일이 더 많다고 믿고 있던 터여서 그의 강론에 선뜻 동의하긴 어려웠지만 지금껏 생각에 생각을 물리게 하는 인상적인 주제였다.

 

사실 가장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가 조직원들에게 어떻게 긍정적인 동기부여를 하느냐이다. 흔히 성과에 대한 보상이 ‘약발’에 가장 좋다고들 한다. 보상이란 반드시 돈의 형태일 필요는 없다는 게 요즘은 두루 공감을 얻는 편이다.

 

권한이라든가 칭찬 따위의 무형적인 가치를 전해주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가 자주 나오니 말이다. 성과급을 받았을 때 보다 상사로부터 인정받았을 때 한결 일할 맛이 난다는 직장인 설문조사 결과도 흔하다.

 

단지 돈 많이 주는 직장이 조직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이다. 그렇다면 직원들에게 월급 많이 안주고도 “당신 잘 하더라. 당신도 잘했더라”며 공치사만 잘 늘어놓아도 그 회사는 실적이 팍팍 올라가고 경쟁력이 불끈 불끈 생길텐데…. 그 쉬운 일이 뭐 그리 어려워서 CEO들은 그토록 밤잠을 설치는 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한국 야구에서 가장 빼어난 리더십으로 꼽히는 두 감독이 있다. 김응룡 현 삼성 라이온스 사장과 김인식 한화 이글스 감독이다. 김응룡 사장은 현역 감독시절 80년대 중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해태 타이거스라는 팀을 다섯차례나 우승으로 이끌었다.

 

김인식 감독은 지난해 월드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한국대표팀을 지휘하면서 ‘덕장’ ‘명장’이라는 평가를 한몸에 받았다. 선수들을 다루는 두 사람의 스타일은 극명하게 대조적이다. 말 붙이기 겁날 정도로 무뚝뚝한 김응룡 감독은 칭찬의 치읏(ㅊ)자도 모른다.

 

선동열이라는 당대 최고의 투수가 김응룡감독에게서 받았던 유일한 칭찬이 정나미 떨어지는 무표정으로 “수고했어”라고 던지는 한마디였다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김인식 감독은 정반대다. 실수를 밥 먹듯해도 “괜찮아. 그럴 수 있는 거지”이고, 밤새 술 먹고 새벽에 잠자리로 들어오는 선수를 보고서도 “야,나도 좀 끼워주지”라고 씨익 웃으며 지나쳐버리는 스타일이다.

 

물론 선수들은 당연히 김인식 감독을 선호한다. 그가 지도한 선수들의 성과는 전반적으로 좋았다. 하지만 김응룡감독은 선수들에게 인기는 빵점이지만 성적은 늘 최고였다. 이들 두 야구 지도자의 캐릭터와 지도방식은 상반됐지만 결과는 다같이 성공적으로 나타났다.

 

딱히 어느 쪽을 권장할 수 없는 이유다. 따져보면 김인식 스타일이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굳이 연구과제로 삼자면 칭찬은 고사하고 제대로 된 평가나 인정해주기에 인색하기 짝이 없어도 탄탄한 팀워크로 최강의 실적을 끌어낸 김응룡 스타일이다.

 

곰곰히 궁리해보니 두 지도자에게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솔직함이다. 가식으로 칭찬하거나 위장된 꾸지람이 아닌, 자신들의 캐릭터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 지도자들이었다. 타고난 성격대로 사람을 다루되 그 방식이 일관되려면 솔직성이 배어있지 않으면 안된다.

 

솔직한 폭군이 거짓된 현군보다 낫다고나 할까. 직원들 격려한답시고 공치사만 늘어놓아선 안되는 까닭의 실마리가 잡히는 듯하다.  

 

황덕준/미주판 대표겸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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