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강남좌파’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서울대 법대 조 국 교수가 지난 5일 LA 한인타운에서 강연회를 가졌다. ‘강남좌파’란 용어는 기득권에 속할 법한 중산층이면서 이념적으로 진보 좌파 경향을 드러내는 오피니언리더를 일컫는 말로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만들어낸 분류개념으로 알려진다. 조 교수는 만 17살에서 한달이 모자란 나이에 서울대 82학번으로 최연소 입학한 뒤 1980년대 초반 법대 언론 학술지 FIDES 편집장으로 학생운동에 참여했다. UC버클리에서 대학원을 다니며 법학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은 뒤 1992년 26살 11개월의 나이로 울산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가 1993년 고향(부산)및 대학 선배인 백태웅씨(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로스쿨 교수)와 박노해 시인이 주도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에 가담한 혐의로 반년간 감옥생활을 겪었다. 재판 당시 노무현 정부 시절 법무장관을 지낸 천정배 민주당 의원이 그를 변호한 인연이 있다. 2000년 동국대 교수를 거쳐 2001년말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조 교수는 참여연대의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등으로 시민운동에 나서면서 진보지식인으로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시절 국가인권위원으로 활동한 적도 있다. 조 교수가 최근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리더군의 한명으로 주목받은 결정적 계기는 지난해 ‘진보집권 플랜’을 집필,발간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겠다. 2010년 11월 발간돼 10쇄까지 찍을 만큼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두고 조선일보는 “진보좌파세력의 바이블”이라고 평해 조 교수의 성가를 한껏 높여주었다. 대중매체 등을 통해 사회여론 형성에 활발하게 기여하고 있는 그는 특히 20·30대 청년층으로부터 ‘안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한국에서 진보적 시사평론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지난 6월 ‘조국 현상을 말한다’라는 책을 발간, 조 교수를 2017년 대선후보로 상정하면서 경쟁력을 분석하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오늘날 조 교수가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짐작할 만한 일이다. 며칠전에는 내년 대선의 야권후보로 거론되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공개적으로 “부산지역출신인 조국 교수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기술대학원장이 내년 총선에서 부산에 출마하면 대선까지 그 판세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해 여야 정치권이 술렁거리고 있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LA를 방문한 그의 강연회는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코리아타운 한복판 윌셔가에 위치한 ‘평화의 교회’에서 열린 조 교수의 강연회 제목은 ‘왜 진보인가’였다. 전반적으로 보수 성향이 강하다는 LA한인사회에서 나름대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진보적인 단체 예닐곱 군데가 십시일반으로 경비를 갹출, 조 교수를 섭외했다고 주최측의 한사람인 김성회씨가 청중들에게 소개했다. 조 교수는 페이스북을 통해 ‘친구맺기’한 김씨로부터 방문 제의를 받고 방학 중에 가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켰다. 조 교수는 강연회 서두에서 “재외동포에게 참정권이 있는 만큼 2012년 총선과 대선의 해를 앞두고 내가 왜 진보를 얘기하는지, 문제의식을 전달하고 싶었다”며 미주한인사회의 투표권을 중시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300여명의 청중이 자리한 강연회는 2시간여에 걸쳐 조 교수가 그동안 한국내에서 설파해온 진보세력의 연대와 통합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근거와 이유를 중심으로 채워졌다. 조 교수는 “진보를 선택할 때 돌아올 개별적인 일상의 이익을 알게 될 것”이라고 생활 속의 진보의식을 강조하면서 “초등학교 무상급식 논란은 생활의 진보를 드러내는 한국사회의 첫번째 사례”라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이 압축적 성장을 이룬 만큼 이제 노동과 복지의 압축적 강화가 새로운 시대정신”이라고 규정, “바로 이 자리에서부터 진보의식을 실천함으로써 정치를 바꿔야 우리의 생활이 바뀐다”고 역설했다. 조 교수는 강연 도중 “나는 정치에 대한 결벽증은 없다. 다만 지금은 진보의 가치를 대중화하는 데 불쏘시개 역할을 할 뿐”이라며 정치인으로의 변신 가능성에 여지를 남겼다.진보세력의 여러 조각을 하나로 붙이는 접착제 역할을 하겠다는 말도 남겨 여러 각도의 해석이 가능한 자세를 보였다. 조 교수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동갑내기 장석남 시인의 ‘수묵(水墨)정원9-번짐’의 한 구절을 인용, “진보개혁 진영의 연대와 통합은 필요가 아니라 필수”라고 단정하는 것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너는 내게로/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번짐,/ 번져야 살지…” 황덕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