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조국의 원초적인 짐을 지고 산다는 것 자체가 위대한 일일진대, 우리 문화와 말을 지키고 계신 동포 여러분이 너무나 감사하지요.” 호남의 ‘예향’ 광주를 대표하는 민족시인 문병란 선생이 LA를 찾았다. 1970년대 군사정권에 저항하는 민주화 투쟁의 한복판에서는 이른바 ‘참여시’로, 80년 5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에서는 뜨거운 분노의 정서로 한국 시문학사를 이끈 문 선생은 우리 나이로 희수(77세)에 접어든 지금에는 ‘민족시인’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며 ‘깨어 있는 정신’을 끊임없이 노래하고 있다.
“민족은 우리 정신의 원형입니다. 분단이 극복될 때까지 민족정신을 고양하는 시 작업을 게을리 할 수 없지요.” 문 선생은 지난 2000년 조선대 교수직에서 정년퇴임한 후 광주시 지산동 무등산 자락에 자신의 호를 딴 ‘서은문학연구소’를 차려 후학 양성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서른한번째 시집 <금요일의 노래>와 영역시선집 <시인의 간>을 출간하는 등 시들지 않는 창작활동을 펴고 있다. ‘지역문화교류 호남재단’ 이사장으로서 각 지역의 문화가 조각나지 않고 하나의 민족정서로 통합되고 교감할 수 있도록 팔을 걷어부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미국 방문 직전인 지난달 말까지 광주에서 제1회 지역문화 시민대학을 열어 ‘기후변화와 역사,그리고 인간’이라는 주제로 5주간에 걸쳐 릴레이 강좌프로그램을 치르기도 했다. 민주화와 민족정신을 거쳐 통일이 되면 문 선생의 문학적 이념은 무엇으로 바뀔까. “평화정신이 되겠지요. 사랑과 평화, 그 궁극의 가치를 한반도에 실천하는 일이 또 남게 되는 거지요.” 모처럼 찾은 미국땅을 실컷 감상하면서 이국에서 또 다른 ‘시상’을 가다듬겠다는 문 선생은 오는 26일까지 머무르면서 팜스프링스,그랜드캐년 등을 둘러볼 계획이다. 문 선생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동포 여러분 또한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라고 들었다”라며 IMF시절 많은 국민들에게 애송됐던 대표시 <희망가>를 들려준다. “얼음장 밑에서도/고기는 헤엄을 치고/눈보라 속에서도/매화는 꽃망울을 튼다//절망 속에서도/삶의 끈기는 희망을 찾고/사막의 고통 속에서도/인간은 오아시스의 그늘을 찾는다//눈 덮인 겨울의 밭고랑에서도/보리는 뿌리를 뻗고/마늘은 빙점에서도/그 매운 맛 향기를 지닌다//절망은 희망의 어머니/고통은 행복의 스승/시련 없이 성취는 오지 않고/단련 없이 명검은 날이 서지 않는다//꿈꾸는 자여,어둠 속에서/멀리 반짝이는 별빛을 따라/긴 고행길 멈추지 마라//인생항로/파도는 높고/폭풍이 몰아쳐 배는 흔들려도/한 고비 지나면/구름 뒤 태양은 다시 뜨고/고요한 뱃길 순항의 내일이 꼭 찾아온다” 황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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