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를 논할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이 선거다. 선거는 민주주의와 비민주주의를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 척도일 뿐 아니라 다수의 의견이 가장 공평하게 반영되는 합리적 수단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오는 19일 진행될 예정이었던 LA 한인회장 선거 역시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진행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과연 선거를 치른다는 것만으로 이를 ‘민주적’으로 평가하기에는 뭔가 부족한게 사실이다. 이번 한인회장 선거를 보면 실제 내용은 전혀 민주주의적인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엉망이다. 우선 선거의 핵심인 다수결이 성립되지 않는다. 역대 한인회장 선거를 되짚어보면 전체 한인 거주인구수의 1%도 안되는 극소수 계층만 참여해왔다.
이번 선거 역시 예정대로 치러졌다고 해도 전례와 흡사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일반 거주한인들이 투표에 참가한다는 전제는 한인회장의 대표성과 직결된다. 10여년전 한인회장을 일반 한인들의 투표로 뽑기로한 배경도 커뮤니티의 대표성을 확보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일반 주민 선거에 의해 첫번째로 뽑인 전임 남문기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는 부동산회사 에이전트들이 동원되는 등 5천여명도 안되는 투표참가인수로 인해 대표성 자체를 언급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한인회가 마련한 선거 규정도 한심하다. 거주지 증명에 3가지 다른 서류를 요구하는가 하면 비영리 단체의 회장 혹은 간부급 임원경력 3년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 한인회가 비영리 단체라지만 비영리 단체 경험이 없다면 좋은 회장이 될 수 없다는 규정의 주체가 누구인지 묻고 싶다. 만일 한국이나 미국에서 이런 잣대를 들이댔다가는 곧바로 차별 논란이 나올 게 뻔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홍보운동을 포함한 모든 유세를 통제하는 것도 문제다. 이는 러시아에서 소위 집권당이 선거 일정, TV 유세, 그리고 홍보전을 자신들이 유리한데로 조정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 메일 발송 금지, 집회시 사전 허락 필수 등 한국에서도 1970~80년대 군사정권하에서나 이뤄졌던 방식이 21세기 미국사회의 한 커뮤니티에서 등장한 것이다. 장소당 200달러로 제한한 식비도 형평성이 없다.
일부에게 떡이나 음료를 제공하는 것을 허락하면서 특정숫자 이상은 안된다는 것은 해괴한 기준이다. TV나 라디오 토론 등도 스케줄을 잡아 놓고 멋대로 취소, 불참해도 ‘그건 후보 마음이다’고 유야무야 넘기는 것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한인회의 행태를 보면 마치 자신들이 모든 한인들의 권익과 목소리를 대변하는 최고 단체인양 내세운다. 한인회 관계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이겠지만 LA지역의 50여만 한인동포들은 한인회가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 알지 못한다. 단체의 존재감 여부조차 개의치 않는다. 그런 동포들을 대상으로 민주주의의 대표성을 확보한답시고 일반 경선투표제도를 만든 것 자체가 코미디다. 1%도 안되는 주민의 투표절차만 밟으면 대표성이 생긴다고 믿는다면 형식논리에 치우쳤다고 할 것도 없이 어불성설이다.
한인회는 자칭 타칭 봉사단체다.커뮤니티의 권익을 위해 존재한다는 명분이야 시비걸 일이 아니다.실질적으로 권익을 지키는 행동이나 사업을 하고 있는 것인지, 봉사활동이라도 제대로 해서 한인들로부터 티끌만큼의 존경이라도 받고 있는 지 새삼스럽지만 자성해야 한다. 특정 개인들의 과시욕을 위한 명함 한장 만들어주기 위해 투표절차를 도입했다면 그건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의 엄정성에 대한 모독이다.
대표성이 허술하다면 차라리 경선투표방식을 버리고 봉사단체답게 내부적인 승계제도를 만들어 추천에 의해 회장을 뽑는 게 맞다. 도대체 무엇때문에 일반 한인들의 관심도 받지 못하는 선거를 한답시고 번번이 시끄럽게 싸우는 소리만 내는 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괜시리 한인동포사회의 이미지만 훼손할 뿐이다. 누가 회장을 하든 동포사회의 발전이나 일상생활에 변화를 주지 못할 바에야 자체적으로 누굴 내세워도 상관없지 않겠는가.쉽게 말하자.
“그냥 여러분끼리 아무나 뽑으세요.” 최한승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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