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미술이 하나의 ‘예술’이 되기 위해선 인간의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전수해 온 박영국 남가주 한인 미술가 협회장이 남가주 한인 예술가들을 위해 쉴새없이 전진하고 있다.
박 회 장은 1947년 서울대 미대 석사과정을 거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오티스 아트스쿨 석사과정을 취득했다. 1990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서울대학교·중앙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한편으론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들을 한국 미술계에 전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상황은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 현상으로 민심이 민감해져있는 시기였다. 미국의 발전된 예술에 대한 많은 강연회와 전람회를 준비하였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문화 체험의 기회는 사치였다.
박 회장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 애썼지만 한국 사회가 자신을 배타한다는것을 느껴 좌절감을 안고 다시 LA로 돌아왔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한국사회가 불안정한 이유도 있지만 나 자신도 성숙하지 않아 사람들과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열정만 가득했었다”라고 회상한다.
처음 타지에 나와 외로움을 느껴 다시 한국으로 갔지만 이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다시 LA로 돌아온 그는 3여년의 방랑시기를 겪지만 이는 곧 박 회장의 내적 성숙을 무르익게 만들어주었다. 박 회 장은 “좀 더 넓게 거리를 두고 현대문명과 미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열정만 가득했던 시기에는 현대미술을 신격화 하여 비판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았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서 보니 현대미술의 불합리성과 허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철학이라고 믿었던 박 회 장에게 인간의 도덕성이 결여된 현대미술은 딜레마로 다가왔다. 현대미술에서 깊은 인간성 결여를 느낀 박 회 장은 ‘변혁’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박 회 장의 초창기 작품이 캘리포니아의 자연풍경에 영감을 얻어 기하학적이고 조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시작적인 LA’였다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 후 그의 작품은 깊숙하고 내적인 삶의 장소로 재조명된 ‘정신적인 LA’로 변화됐다.
미술이 하나의 ‘예술’이 되기 위해선 인간의 ‘진정성’이 필요하다는 가르침을 전수해 온 박영국 남가주 한인 미술가 협회장이 남가주 한인 예술가들을 위해 쉴새없이 전진하고 있다.
박 회 장은 1947년 서울대 미대 석사과정을 거친 후 미국으로 건너와 오티스 아트스쿨 석사과정을 취득했다. 1990년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 그는 서울대학교·중앙대학교 등 여러 대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며 한편으론 그동안 쌓은 지식과 경험들을 한국 미술계에 전달하려 시도했다. 하지만 당시 한국의 상황은 정치적 문화적 양극화 현상으로 민심이 민감해져있는 시기였다. 미국의 발전된 예술에 대한 많은 강연회와 전람회를 준비하였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문화 체험의 기회는 사치였다.
박 회장은 한국에 뿌리를 내리려 애썼지만 한국 사회가 자신을 배타한다는것을 느껴 좌절감을 안고 다시 LA로 돌아왔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한국사회가 불안정한 이유도 있지만 나 자신도 성숙하지 않아 사람들과 마음으로 교류할 수 있는 힘이 부족했다. 열정만 가득했었다”라고 회상한다.
처음 타지에 나와 외로움을 느껴 다시 한국으로 갔지만 이마저 뜻대로 풀리지 않아 다시 LA로 돌아온 그는 3여년의 방랑시기를 겪지만 이는 곧 박 회장의 내적 성숙을 무르익게 만들어주었다. 박 회 장은 “좀 더 넓게 거리를 두고 현대문명과 미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열정만 가득했던 시기에는 현대미술을 신격화 하여 비판 없이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았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서 보니 현대미술의 불합리성과 허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라고 말한다. 현대미술은 더 이상 건드릴 수 없는 철학이라고 믿었던 박 회 장에게 인간의 도덕성이 결여된 현대미술은 딜레마로 다가왔다. 현대미술에서 깊은 인간성 결여를 느낀 박 회 장은 ‘변혁’을 추구하기 시작한다. 박 회 장의 초창기 작품이 캘리포니아의 자연풍경에 영감을 얻어 기하학적이고 조형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춘 ‘시작적인 LA’였다면 로스앤젤레스에 정착 후 그의 작품은 깊숙하고 내적인 삶의 장소로 재조명된 ‘정신적인 LA’로 변화됐다.
박 회장은 “모든 문화의 시작과 끝은 예술이다. 예술가들이 선구자가 되어 우리 문화가 잃어버린 기본적인 ‘인간성’을 찾으려 노력해야한다”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박 회 장은 올 1월 남가주 한인 미술가 협회에 화장으로 취임했다. 박 회장은 “60여년 동안 쌓아 온 철학을 바탕으로 현대미술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고 싶다”라고 포부를 밝히며 “모든 것을 벨 수 있는 명검을 막을 수 있는 것은 ‘먼지’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정체되어 있다면 먼지가 쌓여 녹이 쓸고 말것”이라고 가르침을 준다.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을 찾기 위해 오늘도 박영국 회장의 여행은 계속된다.
권나래 기자
권나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