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는 온화하야 심한 더위와 추위가 없으므로 각인의 기질에 합당함. 모든 섬에 학교가 다 있어 영문을 가르치며 학비를 받지 아니함. 신체가 강건하고 품행이 단정한 사람은 안정되고 장구한 직업을 얻기 더욱 무난하고 법률의 제반 보호를 받게 함. 일하는 시간은 매일 십 시간 동안이요, 일요일에는 휴식함.” 미국 하와이 이민 감독인 랜싱(Theo F. Lansing)이 1903년 8월 6일 자로 공포한 하와이 이민 관련 ‘고시’다. 앞서 황성신문 등에도 하와이 이민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렸다. “기후 온화” “안정되고 장구한 직업을 얻기 무난” “학비 무료” “일요일에는 휴식” 등 하와이 이민 광고 문구는 장밋빛 미래를 약속했지만, 이민자들을 기다린 것은 고된 노동과 이민생활의 설움이었다. 김도형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하와이 이민은 명목상은 ‘자유 이민’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계약 이민’이었다”고 분석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29일 독립기념관에서 열리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월례연구발표회에서 발표하는 연구 논문 ‘초기 하와이 이민에 대한 재검토’에서 하와이 이민을 재조명했다. 그는 28일 연합뉴스와 전화 통화에서 “당시 대한제국과 미국 당국은 (반노예적인) 계약 이민을 금지했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계약 이민이었다”면서 “이민자들 중에는 정말 자유 이민으로 간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뱃삯 등 전대금을 대준 농장에서 1-2년가량 일해야 했다”고 말했다. 당시 대한제국은 하와이 이민 관리를 위해 ‘유민원’이라는 기구를 설립했다. ‘유민원 규칙’ 제2조에 ‘계약고용을 금지하는 나라에 계약노동으로 가는 사람에게는 여행권을 발급하지 않는다’고 규정, 불법적인 계약이민은 허용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다. 미국 역시 남북전쟁 이후 노예매매와 반노예적인 계약 노동자 수입을 금지하고 있었다. 이민자들에게 뱃삯과 숙박비, 입국 지참금 등의 비용을 대주는 것도 불법이었다. 하지만 하와이 이민자 대부분은 뱃삯 등을 대준 하와이 농장에서 돈을 갚기 위해 1-2년간 일을 해야 했다는 게 김 선임연구위원의 분석이다. 그는 “이민자를 보내는 쪽(대한제국)도, 받는 쪽(미국)도 애매한 부분을 합법적으로 처리해버렸다”면서 “하와이 이민은 표면적으로는 ‘자유노동’이었지만 실제로는 전대금제도에 의한 ‘계약 노동’의 형식을 띠고 있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하와이 이민 1세대의 구술 자료, 신문 기사 등을 토대로 하와이 이민자들의 여정을 따라갔다. 1902년 12월 22일 일요일 첫 하와이 이민자 121명이 1천400t급 켄카이마루(玄海丸)를 타고 인천 제물포항을 떠났다. 켄카이마루는 목포와 부산을 거쳐 그해 12월 24일 일본 나가사키항에 도착했다. 이민자들은 나가사키 검역소에서 신체검사를 받고 예방주사를 맞았다. 신체검사와 예방접종 등 비용 1달러25센트는 하와이 농장주들이 지불했다. 신체검사에서 19명이 탈락해 남성 56명, 여성 21명, 어린이 13명, 유아 12명 등 102명만 갤릭(S. S. Gaelic)호 3등 선실에 몸을 싣고 호놀룰루로 향했다. 열흘 뒤인 1903년 1월 12일 밤 12시 갤릭호는 호놀룰루 외항에 입항, 다음날 새벽 3시 30분까지 외항에 대기하다가 검역 부두에 도착했다. 하와이 이민자들 앞에 닥친 첫 번째 난관은 상투를 자르는 일이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이민회사 사무원들은 출발하기 전에 상투를 잘라야 한다고 강권했다”면서 “할 수 없이 상투를 잘랐지만 서운한 마음에 (상투는 없지만) 탕건을 쓰고 가거나 100명 중 2명 정도는 상투를 튼 채로 그대로 하와이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이민자들은 고생길인 하와이 이민행을 왜 선택했을까. 김 선임연구위원은 “하와이 이민이 시작되기 전 한국의 상황은 계속되는 가뭄과 홍수로 인해 기근이 심각했다”면서 “기근에서 벗어나 잘 살 수 있다는 말이나 선전을 듣고 이민 배에 올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독교 전파, 한국인의 높은 교육열 등도 하와이 이민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하와이 이민자들은 열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하와이 이민 110주년을 맞아 한국인의 시각에서 하와이 이민사를 조명한 ‘대한의 미국, 하와이’(가제)를 펴낼 계획이다. 1996-1997년 하와이대 한국학센터 객원학자로 있으면 하와이 이민사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그는 “하와이 이민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한 책은 미국 학자인 웨인 패터슨 교수의 저서가 거의 유일하다”면서 “이 책은 미국인의 시각에서 하와이 이민사를 정리했는데 이민을 보내는 입장과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입장을 균형 있게 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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