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못미 훈남, 꽃미남”, “듣보잡, 강퇴”, “얼짱, 몸짱, 한 턱 쏴!”
10년 가량전인 2000~2006년 사이 신조어로 국립국어원의 신어 기초자료 심사대에 올랐던 말들이다. 강퇴는 2000년, 꽃미남은 2002년, 몸짱은 2003년, 지못미는 2005년, 듣보잡은 2006년 신조어이다. 물론 이 중에는 신어 사전에 등재되지 않은 것도 있다.
대체로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다. ‘지못미(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는 마음을 아리게 한다. 굳이 세태비판적으로 지적한다면, 당시 신어들 속에 담긴 ‘외모 지상주의’를 꼬집을 수 있겠다.
국립국어원이 10일 공개한 ’2012년 신어 기초 자료’ 보고서에 나온 말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최근 들어 신조어가 먹고살기 힘든 세태를 반영하면서 부쩍 우울해진 느낌이다. 이 때문에 사회제도의 개선과 함께, ‘웃음 담긴 신조어’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2013년 유쾌한 신조어의 대표자 ‘행쇼’는 행복하십쇼의 줄인말이다.
‘등골 백팩’은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될 만큼 비싼 책가방을, ‘에듀푸어’는 과다한 교육비 지출로 가난해진 사람을 뜻한다.
생애주기별 모든 세대의 고단함이 ’2012 신어’에 등장한다. ‘손주병’은 맞벌이 자녀 대신 조부모가 손주들을 돌보며 생기는 정신적, 건강상의 문제점을 지칭하고, ‘펭귄부부’는 펭귄의 희생정신에 빗대 가족의 생활 방식을 모두 어린 자녀에 맞추는 부부를 의미한다. 직장내 따돌림을 뜻하는 ‘직따’와 월급만 축내는 게으른 직장인을 이르는 ‘월급 루팡’도 신조어 기초자료에 포함됐다.
1030 젊은세대의 현실을 반영한 신어가 유난히 많다. 경제상황이 나빠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하는 세태를 반영한 ‘삼포시대’, 경제적으로 자립하고도 독립하지 않은 채 부모에게 집값을 내고 부모와 함께 사는 자녀를 뜻하는 ‘신캥거루족’, 취업 후에도 찰거머리처럼 부모에게 붙어 심적,물질적으로 기대어 사는 ‘찰러리맨’, 착취논란이 일었던 알바를 하던 중 돌연 연락이 끊긴 ‘알바추노’ 등이다. 또 집안에 처박혀 사는 ‘동굴남’,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신생아남’, 모든 것 비판만 하는 ‘모두까기 인형’도 등장했다.
’2012 신어’ 중에 명랑, 정감, 경쾌함이 느껴지는 낱말을 찾기가 쉽지 않다. 꽃미남, 훈남에 이어, ‘가지고 싶은 남자’를 뜻하는 ‘가싶남’, 실속파 짠돌이 ‘간장녀’, 생활력이 강한 ‘생강녀’, 맞벌이 신랑후보 1순위로 능력있고 청소도 잘하는 ‘능청남’ 정도에 그친다.
신어들이 요즘들어 확실히 우울해졌다. 세태를 반영한다는 신조어가 요즘 왜 이리 어두운지 우리 사회의 어른들이 곱씹어보아야 한다. 예전보다 참을성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가벼이 여기기엔 좀 심각해 보인다.
2013년형 신조어가 벌써 나돈다. ‘NG족’ 취업난에 따른 졸업유예자(No Graduation)을 뜻한다. 당선후 입장을 다소 바꾼 바람에 생긴 ‘먹튀 공약’도 도마에 올랐다.
그나마, 한 연예인의 재치있는 덕담을 계기로 돌고 돌다 TV프로그램 문패로 까지 부상한 ‘행쇼’(행복하십쇼)가 우릴 미소짓게 한다. 올해엔 웃을 신조어 좀 만들어보자.
[함영훈 미래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