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대반전 – 민수봉의 ‘내공’은

민수봉 행장이 다시 한인은행권에 복귀했다. 그것도 한인사회에서 자산규모가 가장 큰 BBCN뱅크의 최고경영자(CEO&President)로 화려하게 컴백했다. 지난 2007년 윌셔은행에서 물러난 뒤 5년 가까이 야인으로 생활하며 칠순 나이 탓에 사실상 은퇴한 인물로 여겨졌던 그였다. 그러더니 지난해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유나이티드센트럴뱅크(UCB)의 행장으로 전격 컴백, 현직에 대한 미련이 강했음을 나타냈다. 몇달 안돼 UCB 행장직을 슬그머니 그만 둬 금융위기 이후 녹록치 않은 은행경영의 쓴 맛을 봤으니 완전히 은퇴생활의 길로 접어드는가 싶었지만 한인뱅커들이 가장 선망하던 최대규모의 은행 사령탑 자리를 덜컥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경이로운 ‘노익장’이요, 쓰러져도 다시 일어선다는 ‘부도옹(不倒翁)’의 화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하기에 BBCN이 민수봉씨를 행장으로 선임한 경위 또한 놀랍고, 무엇보다 BBCN의 선택을 끌어낸 민씨의 ‘내공’은 도대체 무엇일까.

1994년부터 1999년까지 한미은행장을 역임한 민 행장이 맡았던 윌셔은행은 취임 당시만해도 6개 지점에 자산규모 2500만달러에 불과했다. 민 행장이 은행장직을 사임했던 2007년 윌셔은행은 16개 지점에 대출사무소 9개 그리고 자산규모 20억달러에 육박하는 번듯한 커뮤니티 은행으로 고속성장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은행주가 폭락하는 사태 속에 민 행장 또한 성장 위주의 경영에 따른 책임을 피할 수 없었다. 스스로 물러났지만 민 행장으로서는 윌셔의 주가가 폭락해 10달러선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떠난 것이어서 명예스러운 퇴진은 결코 되지 못했다. 그의 후임인 조앤 김 행장(현 cbb뱅크 행장)조차 민 행장 시절 윌셔은행의 외형 키우기에서 핵심참모 역할을 했다가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규모 부실대출이 드러나면서 그에 따른 책임을 지고 윌셔를 떠났다. 결국 민 행장 시절의 윌셔은행은 외화내빈이었다는 비판이 높았고, 거기에 연로한 나이까지 겹쳐 그의 현역 복귀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일처럼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지난 2011년 12월 UCB 행장을 맡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의아스럽게 여겼던 것은 그런 연유에서 였다. 당시 UCB는 강력한 행정제재(C&D)를 받고 있었고 민 행장이 은행을 다시 일으켜 세울 구원투수로 적임인가 싶은 의구심이 컸던 탓이다. 아닌게 아니라 민행장은 UCB 시절 경영정상화 보다는 윌셔은행 등에 합병을 타진하는 쪽에 몰두, 이사진과 갈등을 겪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반년만에 텍사스에서 LA로 돌아오게 된 것도 그러한 배경이 있었다.이처럼 윌셔은행과 UCB를 거친 민 행장의 경력은 그리 깔끔하지 못한 성적표였다. 현역을 매듭짓는 마무리가 명예롭지 못했다는 점에서 BBCN의 행장 자리가 비게 되자 민씨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게 됐다는 얘기는 그래서 설득력 있다. 민 행장은 뱅커로서 명예롭게 은퇴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 밖에 없는 BBCN 행장 자리가 그만큼 탐이 났을 거라는 말이다.

민 행장은 친화력과 소통력, 상황판단력에 관한한 어지간한 정치전략가 뺨치는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은행가에서 영어구사력이 뒤처지면서도 사반세기 세월을 최고경영자 위치에서 버텨온 것은 그만큼 자신의 모자람을 채우게 만드는 용인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에게는 적이 없다.아무리 자신에게 칼을 겨눈 상대일지라도 필요하면 눈을 맞대고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타고난 소통력을 발휘한다. 자존심 때문에 비즈니스를 그르치는 일은 거의 없는 유형에 속한다. 여러가지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BBCN 이사진의 마음을 얻어낸 것도 그같은 타고난 캐릭터 때문이라는 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한다. ‘영업의 귀재’라는 별명도 따지고 보면 고객과의 소통과 친화관계에서 탁월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이런 장점이 역설적으로 BBCN 이사진의 선택을 끌어낸 요인으로 보인다. BBCN의 이민 1.5세대 매니지먼트급 간부들이 1세대 이민자로서 ‘올드 스쿨’인 민 행장의 경영마인드와 리더십과 마찰을 겪는다해도 소통과 친화로 융화될 것이라고 기대했다는 얘기다.

민 행장은 1959년 한국상업은행에 입사, 32년동안 상업은행의 도쿄, 시카고, LA 지사를 거쳐 1994년 한미은행장으로 미주 한인은행권과 인연을 맺었다.

성제환 기자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