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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이민사가 커뮤니티에 끼치는 영향은 얼마나 될까.
유분자 소망소사이어티 이사장(78). <루디 헤럴드>의 신년기획 ‘여성파워’의 세번째 주인공이다.
1968년 도미했으니 미주에서 살아온 시간만 반세기가 되어간다. 그녀가 걸어온 길 위에는 크고 작은 열매가 영글었고 그 속에는 한인 이민사의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재미 한인간호사의 대모, 이민사회의 개척자, 이민 여성들의 대변인, 한인여성운동가 1호…. 그녀에게는 수 많은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어느 하나 의도한 바는 없다.
“그저 매 순간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일이 있었고 아무도 하지 않기에 내가 했을 뿐이예요. 돌아가신 친정 어머니가 소처럼 일하라고 하셨는데 돌아보면 정말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웃음)”
이민 초기 가족의 생존을 위해 투잡을 뛰며 밤낮으로 일했다. 낯선 타지에서 고생하는 한인간호사들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1971년에 만든 남가주한인간호협회는 4년만에 한인간호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재미간호협회로 발전했다. RN(간호대학을 졸업한 국가면허 소지 간호사)이 고소득 전문직으로 이민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RN 한국어 리뷰클래스를 1973년 마련해 예상문제집을 만들어 여성들의 RN면허 취득을 도왔다. 이를 통해 RN자격을 획득한 간호사가 3천명이 넘는다.
가난한 조국에서 이민이 애국이었던 시절, 한식 프랜차이즈 ‘비지-비’를 설립한 1975년에는 직계가족은 물론 이민을 원하는 이웃 친지들까지 스폰서를 자처하고 나서서 영주권 취득을 도왔다. 신분문제로 딱한 사정에 있는 한인들이 있으면 지나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영주권을 취득한 사람들이 100여명에 이른다.
이민가정에 갈등이 생기고 크고 작은 문제들이 불거지기 시작한 1980년대들어서는 1984년에 가정법률상담소를 만들어 한인여성의 인권을 위해 싸웠다.또한 조국이 IMF 외환위기 사태로 신음할 때에는 한국의 결식아동을 위해 ‘나라사랑 어머니회’를 만들어 굶고 있는 아이들을 어미의 심정으로 품에 안았다. ‘어머니회’는 이후 터키, 동티모르, 베트남, 이라크, 북한 등의 불우 어린이를 돕는 단체로 성장했다.
한인 이민 100주년을 맞이한 2000년대에 이르자 한국과 미국 한인사회의 여러 곳에서 그녀의 지난 공적을 치하하며 크고 작은 상들을 선사했다. 이제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 조용하고 편안한 여생을 보내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지만 그녀는 또하나 ‘꼭 필요하지만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발견했다. 바로 2007년에 창립한 ‘소망소사이어티’를 통해 전하고 있는 ‘아름다운 삶과 죽음’에 관한 이야기다.
“나는 이제 살아갈 날보다 살아온 날이 많은 사람입니다. 언젠가 죽음을 당하지 않고 맞이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웰빙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웰다잉이죠. 자신의 일상과 주변을 차분히 정리하면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자신 뿐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소망소사이어티는 ‘생존유언장’ 작성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장기나 시신기증 문제, 위급한 상황에서 내가 어디까지 의료행위를 원하는지, 어떻게 자신의 장례식을 치를지, 화장을 할 것인지,매장을 할 것인지, 재산과 조의금의 처분 문제까지 상세하게 기록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생명을 나누는 일도 함께 한다. 소망소사이어티의 최대 사업인 ‘소망우물’이 바로 그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인 아프리카 차드에 식수를 공급하기 위해 우물을 만들어 주는 프로젝트다. 식수가 없어 오염된 물을 마신 아이들이 콜레라에 걸려 죽어가는 곳이다. 지금까지 158개의 우물을 만들어 생명수를 공급했다. 200개의 우물을 파는 것이 올해 목표다.
“삶을 가장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나눔입니다. 내가 가진 것을 나누면 다른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나요?”
‘여성이 살아야 나라가 살고 인류가 산다’라는 말은 유분자 이사장이 살아온 삶의 모토다. 지금도 한인여성을 위한 ‘라이프 코치’이기를 자처하며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내 나라도 아닌 미국에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골프치고 쇼핑하는 엄마가 아닌 삶의 목적과 목표를 가진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세요.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내’가 ‘바로 지금’해야 합니다”
나로 인해 더 아름다워지는 세상. 유분자 이사장이 마지막으로 꿈꾸는 ‘소망’이다.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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