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말로만 하는 재외국민 투표, 정치력 신장 없다

 
“말로만 투표해서야 어떻게 정치력을 갖겠느냐”
21일 오전 LA한인타운 인근 투표소를 찾은 어느 한인 유권자의 지적이다.
 
지난 수개월간 여러 한인 단체들은 ‘한인 커뮤니티의 정치력 신장’이라는 명분 아래 지속적으로 투표 참여 운동을 전개했다. 특히 LA시 최초의 한인 시의원(13지구 존 최 후보)을 만들자는 한인들의 열망은 그 어느때보다 높은 선거 참여를 기대하게 했다.
 
하지만 투표 당일인 21일 오전  LA시 일대에 설치된 투표소를 찾은 한인 유권자의 수는 그간 달아오른 참여 열기의 진정성이 의심될 만큼 소수였다.

이미 상당수의 한인이 우편 투표를 통해 한표를 이미 행사했기 때문에 투표소를 찾은 한인들만으로 실제 투표율을 가늠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편 투표율 역시 지난 3월 예비선거 당시 22.8%보다 조금 오른 23.7%선(21일 선거 최종 투표율 예상은 25%)에 머무를 것이라는 선거국의 예측을 감안하면 평균 투표율 보다 낮은 한인들의 참여율은 아무리 높아도 20% 정도라고 한다.

한국의 인터넷 용어중 ‘키보드 워리어’란 말이 있다.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공간에서 말로만 싸우는 네티즌을 비꼬는 표현이다. 이들은 말로는 자신의 지식과 주장을 뽐내면서도 실제 오프라인 공간에서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만다.
 
선거참여에 관한한 다수의 한인이 이같은 ’키보드 워리어’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한인들은 말로는 그 어느 인종보다 열심히 정치력 신장을 외치지만 실제로는 투표소라는 오프라인를 찾지 않는다.

투표는 자신의 의견을 합법적으로 반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다. 유권자는 이 투표를 통해서 자신이 원하는 정책이 발효되도록 힘을 행사할 수 있다. 만일 선거국이 ‘구두 투표’를 받는다면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어떻게든 유권자 등록과 투표라는 정해진 규정을 이용해야만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데 한인들은 아직도 ‘투표=정치력 신장’이라는 인식의 실천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번 시선거에서는 한인 유권자들의 긍정적인 측면도 엿볼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억울하면 되값는 태도다. LA 시장 선거에 출마한 에릭 가세티 후보는 그간 한인커뮤니티로부터 많은 지지와 이에 상응하는 정치자금을 모금했다.
 
그런데도 가세티 후보는 지난번 선거구 재조정 때도 그렇고 이번 13지구 선거에서도 한인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선거구 재조정에서는 암묵적으로 자신의 시장 선거를 지지한 허브 웨슨 현 시의회 의장을 위해 입을 다물었다.
 
또 이번 13지구 선거도 중립을 지키겠다는 기존의 약속을 깨고, 선거모금전이 마감되자 마자 존 최 후보의 경쟁자인 미치 오패럴 후보를 지지했다. 가세티 후보 캠페인이 이런 결정의 여파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투표 당일인 21일 투표소를 찾은 한인 및 소수계 이민자들은 서로 입을 모아 “가세티에게 표를 주지 말자”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상당수의 한인은 “가세티가 오패럴 후보를 지지 선언한 후 마음을 바꿨다”라고 말했다. 사람이 지나치게 인색하면 못쓰지만 어느 정도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게 양식이고 상식이다.
 
한인들은 가세티 후보의 당선 유무와 무관하게 그의 행위에 반발하면서 한인 커뮤니티가 주류사회 정치인들의 저금통이거나 ‘예스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줬고 이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커뮤니티의 위상 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대응이었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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