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 직원명의 ‘꼼수 고발’ 잇따른다

국가기관이 기관의 업무처리를 비판하는 이들에 대해 소속 직원을 앞세워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에 따라 나온 대안으로 보인다.

28일 법조계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선관위 측은 ‘제18대 대통령 부정선거 백서’의 저자 2명을 상대로 지난 10월 19일과 11월 19일 각각 한 건씩 법적 대응에 나섰다. 책 속에서 저자들은 18대 대선이 선관위와 이명박정부, 새누리당이 합작한 총체적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선관위는 이것이 선관위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소를 제기한 주체는 서로 다르다. 10월 19일 제기된 것은 선관위 직원 8명이 주체가 돼 검찰에 고소한 형사사건이다. 반면 11월 19일 제기된 것은 선관위가 직접 나서 서울중앙지법에 낸 민사가처분신청이다.

선관위가 검찰 고소에 직원을 앞세운 이유는 국가기관은 형사사건에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는 법적 판단이 이미 확립돼 있기 때문이다. 2011년 대법원은 “국가기관은 형법상 명예훼손죄의 피해자가 될 수 없다”고 판시한 바 있다. 국가기관의 업무처리는 국민의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며, 국가의 피해자 자격을 폭넓게 인정할 경우 표현 및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반영한 것이다.

검찰 역시 이러한 판단에 따라 “국정원이 ‘박근혜 사찰팀’을 운영했다”고 주장한 이석현 민주당 의원과 “국정원이 십알단과 연계돼 있다”는 주장을 한 나꼼수 멤버를 불기소 처분한 바 있다.

국가기관은 자신을 주체로 한 고소전에서 승산이 없게 되자 소속 직원의 명의를 동원하는 방식으로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지난 6일 국정원 수사관들은 “서울시 탈북 공무원 간첩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뉴스타파의 최승호 PD를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올해 초에는 국정원 감찰실장이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비판한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를 고소하기도 했다.

반면 형사사건과는 달리 민사적으로는 여전히 국가기관이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법원은 국정원이 자신에 대한 사찰 의혹을 제기한 박원순 서울시장을 상대로 벌인 민사소송에서 모두 국가 패소 판결을 내리면서도, 국가기관도 제한적으로 명예훼손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선관위가 가처분신청을 낸 것도 이 때문이다.

김성훈 기자/paq@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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