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외길 20년 이현석…“20년 후에도 테크니션 진수 보여줄 것”

기타리스트 이현석이 지난 1992년에 발표한 데뷔앨범 ‘스카이 하이(Sky High)’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한계를 시험하는 듯한 정교하고 화려한 속주는 기존의 국내 록 기타리스트에게선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것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에겐 ‘한국의 잉베이 맘스틴(스웨덴 출신 세계적인 속주 기타리스트)’이란 별명이 따라붙었다. 독학으로 연주를 완성한 이현석은 국내 어떤 록 기타리스트의 계보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시작부터 독존(獨存)이었던 그는 기타리스트가 연주곡을 담은 앨범을 발표할 수 있다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꾸준히 작품 활동을 벌이며 장인(匠人)의 길을 걸어왔다. 그는 데뷔 20주년 역시 결코 평범하게 맞이하지 않았다. 데뷔 20주년 기념앨범을 발매한 이현석을 최근 그가 운영 중인 서울 창전동 클럽 ‘스카이 하이’에서 만났다.

이현석은 “지난해가 데뷔 20주년이었는데 제작에 공을 들이다보니 1년 정도 발매가 늦어졌다”며 “기존 앨범에 담긴 연주가 20년 세월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했는지, 앞으로 어떤 연주를 할 것인지 음악으로 들려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기타리스트 이현석이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했다. [사진제공=이현석]

이번 앨범은 데뷔 20주년이란 세월 이상의 무게감을 준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기타리스트가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앨범을 발표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앨범엔 1집부터 2005년 5집 ‘마이셀프(Myself)’까지 수록곡들 중에서 고른 28곡과 ‘개털이야’ 등 신곡 4곡을 포함해 총 32곡이 두 장의 CD에 담겼다. 이현석은 기존의 곡들을 모두 사실상 원테이크에 가까운 방식으로 재녹음해 앨범에 실었다. 그는 또 스튜디오 대신 클럽 ‘스카이 하이’를 스튜디오로 삼아 모든 연주ㆍ녹음ㆍ믹싱ㆍ마스터링 작업을 진행하는 실험적인 시도를 감행했다. 김세호(보컬), 한철재(베이스), 노호현(드럼) 등 정상급 동료 연주자들이 힘을 보탰다. 디지팩(Digipak) 케이스에 화보까지 담아낸 앨범의 부피는 여느 아이돌들의 앨범 못지않다.

이현석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야 한다는 상식에서 벗어나 클럽을 스튜디오로 만들어 모든 작업을 홀로 진행한 것은 내게 있어 능력 시험에 가까운 힘든 과정이었다”며 “내가 20년 넘게 이만큼 해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또 나부터 애착을 가질 만한 기념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다른 연주자의 앨범에 담긴 연주를 냉정하게 평가하긴 쉽지만, 자신의 앨범에 담긴 연주를 냉정하게 평가하긴 어렵다”며 “엔지니어에게 의존하는 대신 모든 과정을 홀로 진행하면서 타인에게 들리는 내 연주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최근 이현석의 정규 2집 수록곡 ‘학창시절’이 tvn 드라마 ‘응답하라1994’에 삽입돼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학창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되살리는 가사와 대중친화적인 멜로디 속에서도 빛을 발하는 비범한 기타 연주는 당시 대중에게 짙은 잔상을 남겼다. 그러나 연주자로서 록을 고집하며 살아가는 일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신곡 ‘개털이야’의 “라면만 먹고도 할 수 있단 초심은 잃지 않아도 어느덧 생긴 식솔 걱정에 한숨이 찾아드네”와 같은 가사는 이 땅에서 로커로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모험인지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순간을 외면해버린 세월 아깝다 생각해도 한 번도 나를 변하지 않게 하는 나만의 힘이 있어”와 같은 가사에선 회한을 넘어서는 긍정의 힘이 엿보인다.

이현석은 “나는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고 내 길을 걸어왔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고, 내 생에 후회는 없다”며 “앞으로 20년 후에도 나이 들어 예전 같지 않다는 소리를 듣지 않는 실전 플레이어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이현석은 “내년 2월 서울을 시작으로 대전, 부산, 대구, 광주, 전주 등을 도는 전국 투어를 마친 뒤, 클래식 연주와 속주를 결합한 곡들을 담은 정규 6집을 발매할 계획”이라며 “‘전영혁의 음악세계’ 같은 음악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들이 사라져 안타까운데, 기회가 된다면 숨겨진 보석 같은 음악을 전하는 심야의 DJ로도 활동해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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