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 트라우마로 지갑열기 주저
추수감사절 매출 2.8% 하락
신흥국 수입의존 줄어 투자도 감소
“최후의 소비시장 입지 큰 타격”
신흥국 긴장…테이퍼링도 눈치
미국의 경기 회복이 신흥국 경제 성장으로 이어지는 ‘세계 성장 방정식’이 깨지고 있다. 최근 미국 경제 지표 호전에도 불구, 지난 2008년 리먼사태의 트라우마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는 것이 신흥국 경제성장을 이끌지 못하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세계 소비시장 ‘최후의 보루’로서의 입지를 잃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로 미국 유통업계의 대목인 연말 쇼핑시즌을 앞두고 발표된 11월 소비자신뢰지수는 7개월만에 최저치인 70.4를 기록했다. 이는 전달 수정치인 72.4와 시장 전망치인 72.6을 밑돈 것이다.
연말 매출 부진을 우려한 전문가들의 전망은 현실로 나타났다.
1일(현지시간) 전미소매연합(NRF)에 따르면 추수감사절인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일까지 4일간 유통업계의 전체 매출액은 574억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591억달러보다 2.8% 하락했다.
미국인들의 ‘지갑 열기’가 예전같지 않은 가운데 미국이 전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도 ‘미국 경기 회복≠신흥국 경제 성장’의 원인으로 꼽혔다.
보통 미국 경제가 1% 성장하면 다른 국가들은 0.4% 성장하지만, 올해는 0.3%성장에 그쳤다. 규모로는 640억달러에서 480억달러로 줄어들었다.
이는 미국 경제의 비중이 예전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GDP가 전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31%였으나 올해는 22%로 크게 줄어들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3배 증가해 12%를 기록했다.
마노이 프라단 모간스탠리 신흥시장 이코노미스트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세계 경제성장은 제로섬 게임이 되어가고 있다”며 “미국의 경제성장이 다른 국가들의 경제 성장을 가져오는 금융위기 이전의 모델로 돌아가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블룸버그가 경제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미국의 경제성장률을 올해 1.7%, 내년 2.6%, 2015년 3%로 예측되고 있는 상황에서 신흥국 경제가 예상밖의 침체를 겪는 것도 금융위기 이전 통용되던 ‘미국 성장=신흥국 성장’ 방정식을 깨는 사례다.
신흥국에 대한 수입이 수출을 초과하면서 나타나는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2006년 3분기 국내총생산(GDP)의 6%에 달하던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 규모는 올 2분기 2.5%로 축소됐다. 미국의 셰일가스를 중심으로 한 에너지 붐과 제조업 성장이 대(對) 신흥국 수입규모 축소의 주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신흥국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줄어들면서 투자규모 역시 축소될 전망이다. 국제금융협회는 신흥국시장에 대한 외국인 투자자금 유입이 지난해 1조2000억달러에서 내년 1조달러 규모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테이퍼링(양적완화 단계 축소)과도 연관이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 제조업 부흥으로 신흥국에 대한 투자매력을 잃고 있기 때문이라고 블룸버그는 분석했다.
이같은 ‘미국 경기 회복≠신흥국 경제 성장’의 새로운 방정식은 미국 증시 호황과 신흥국 증시 부진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올해 스탠더드앤푸어스(S&P)500 지수의 수익률은 29%였지만, 818개 신흥국 기업이 포함된 MSCI신흥국시장 지수는 2.2% 손실을 입는 등 미국과 신흥국 증시가 탈동조화를 넘어 양극화 흐름을 보이고 있다.
문영규 기자/ygmoo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