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팸플릿도 안 봐요”vs“어서오세요 고객님!”

청약 경쟁 치열한 지역선
1시간 넘게 기다려 분양상담

미분양 모델하우스 방문땐
팀장 상담에 경품까지 제공

내집 마련을 꿈꾸는 수요자들이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주택분양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1순위 청약 경쟁이 치열한 인기 지역에선 예비청약자들이 불편과 푸대접을 받기 마련이다. 반면 미분양 사태가 빚어진 분양 단지에선 수요자들이 왕이나 마찬가지다.

이에 헤럴드경제는 지난 몇 달 간 분양시장의 민낯을 겪은 무주택자를 만나 그들의 체험담을 들어봤다. 기자도 실제 분양 대열에 뛰어드는 등 청약을 체험했다.

▶1시간 반 기다려 간신히 분양상담…‘팸플릿 좀 보세요’ 핀잔도=충남에서 상경한 직장인 박재훈(가명ㆍ33)씨는 주택 분양시장 재수생이다. 대학시절부터 10여년간 하숙-월세-전세를 전전한 그는 이삿짐을 싸는 데 이골이 났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집을 사려면 청약통장부터 만들라’고 다그쳤다.
그는 2009년 직장을 잡자마자 주택청약종합저축에 가입했다. 부양가족이 없고 나이가 상대적으로 어렸기에 청약자격을 갖추려면 납입을 자주하는 방법뿐이었다. 월급을 쪼개 매달 42만원을 36번에 걸쳐 넣었다. 작년 박씨는 꿈에 그리던 청약 ‘1순위’자격을 얻었다.

주택분양 시장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주택 수요자들도 냉탕과 온탕을 오가고 있다. 사진은 수도권의 한 신규 분양단지에서 청약 상담을 받고 있는 본지 윤현종(오른쪽) 기자.

박씨가 처음 도전한 청약시장은 지난 9월 견본주택을 개관한 서울 마곡지구였다. 그는 “서울에 남은 마지막 ‘금싸라기’라고 광고하기에 기대가 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희망은 절망이 됐다. ‘당첨’의 벽은 높아만 보였다.

박씨처럼 내집 한칸이 절실한 수요자는 너무 많았다. 로비부터 꽉찬 방문객을 뚫고 상담창구에 도착했다. 번호표를 뽑고 1시간 반을 기다려 앉았다. 그러나 분양상담사는 ‘유명 건설사가 시공하고 입주는 내년 6월’이란 말만 반복했다. 당첨 가능성이나 분양가 등 그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지만 분양상담사는 “여기 팸플릿 보시면 다 나오는데, 안 보이세요?”라며 은근히 핀잔을 줬다.

견본주택에서도 얻은 정보가 거의 없으니 조언을 구할 곳도 마땅찮았다. 결국 박씨는 ‘혼자 머리를 굴려’ 공급125㎡를 신청했다. 하필 경쟁률 360여대 1을 찍은 주택형이다. 결과는 탈락. 그는 “아파트 청약이 마치 눈치작전이 치열한 대학입시 원서접수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박씨는 이후 기자와 같이 돌아본 다른 아파트 분양시장에서도 연거푸 미끄러졌다.

▶미분양 아파트 파는 견본주택에선 방문객이 ‘왕’=박씨가 청약에서 탈락한 이유는 인기 단지만 찾아다녔기 때문이다. 기자는 낙담하는 박씨를 설득해 최근 미분양된 A아파트 견본주택을 방문했다. 미분양난 A아파트는 청약통장 없이 선착순으로 동ㆍ호수를 지정해 계약할 수 있다는 장점이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기자와 박씨는 견본주택 입구에서부터 최고 대우를 받았다.

분양상담사들의 ‘팀장’이 달려나와 박씨와 기자를 맞았다. 10분정도 지나자 팀장의 상급자까지 나와 깍듯이 인사하며 분양상담을 이어갔다. 그들은 모형주택을 몸소 안내하며 목소리 톤을 높였다. 가계약금 100만원이면 내집 장만이 가능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나갈땐 컵라면 한 상자를 ‘선물’로 안겨줬다.

그러나 박씨는 고민만 더 커졌다. 미분양난 곳은 당연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계약해도 만족감보단 실망이 더 클것 같아서다. 그는 “좋은 곳에 새 집 장만하는 게 참 힘드네요”라며 쓸쓸히 뒤돌아섰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박씨처럼 고민하는 주택 수요자들이 점점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분양시장의 양극화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팀 전문위원은 “단기차익을 볼 수 있는 곳에만 청약수요가 몰리면서 신규 분양시장의 양극화는 더 고착화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윤현종 기자/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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