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결국 사랑하는게 가족
세밀한 심리 묘사로 공감 이끌어
비호감은 있지만 비현실은 없고
불륜과 갈등도 현실성있게 그려
자극적이진 않지만 은근한 감동
지상파 주말극은 오랜 기간 김수현ㆍ박정란ㆍ김정수 등 노작가들이 써왔다. 최근 몇 년 사이 박지은(넝쿨째 굴러온 당신), 소현정(내 딸 서영이) 작가로 넘어오며 약간 젊어졌다. 주말극에 ‘개콘’ 못지않은 코믹한 설정의 트렌드를 살짝살짝 가미하면서도 50회가 넘는 주말극의 뚝심과 완성도를 유지할 수 있는 드라마 작가를 찾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주목을 끌려고 하다 각종 양념을 쳐 막장적인 느낌이 드러난다든가 아니면 스토리의 부족이나 밋밋함에 허덕이는 경우가 더러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 최현경이라는 중견작가가 쓰고 있는 MBC ‘사랑해서 남주나’는 주말극으로서 중심을 잘 잡아나가고 있다.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KBS ‘왕가네 식구들’보다는 자극과 강도가 약하지만 공감을 주면서 은근히 감동까지 준다. 얄밉거나 비호감 캐릭터는 있지만 비현실적인 캐릭터는 없다. 불륜은 있지만 당사자와 가족의 상처 등 심리상태와 관계를 현실성 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나감으로써 치유와 해소에 초점을 맞춰 막장 드라마와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린다. 하지만 그 가정은 자신이 예측한대로 척척 굴러가지 않는다. 아니, 점점 멀어져간다. 믿었던 사람,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배신하면 원망도 더 커지는 법이다. 하지만 결국 소통하고 화해하고 사랑해야 하는 게 가족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인생의 황혼기에 새로운 로맨스를 꿈꾸는 박근형이 있다. 박근형은 열심히 살아왔지만 외도로 인해 혼외자식을 데리고 들어오며 한순간에 자식들과 멀어졌다. 그래서 자식들과의 소통이 가장 힘들다. 판사 출신이어도 그의 노년은 외롭다. 그러다 단골로 드나들던 반찬가게 주인 홍순애(차화연)와 가까워졌다.
딸인 한고은은 “연애할 사람이 없어서 반찬가게 아줌마냐. 전직 판사와 반찬가게 아줌마, 이게 그림이 되느냐”고 반대한다.
하지만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박근형-차화연의 황혼 로맨스는 평소 드라마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노년의 사랑의 감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서로를 배려하며 잔잔하게 다가가는 중년의 로맨스는 아름답기까지하다. 박근형은 진중하고, 차화연은 화끈하면서도 속정이 깊다. 바람 핀 남편(강석우)과 이혼한 차화연은 여생을 사랑받으면서 살고 싶은 여자다.
사랑은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사랑해서 남주나’는 노년의 사랑도 설렐 수 있음을 보여주며 가족과 원만히 지내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생각하게 한다. |
박근형과 차화연의 차속 키스신은 가슴을 뛰게 했다. 중년에도 저렇게 애틋하고 순수한 사랑의 감정이 생긴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로 외로움을 달래가며 남은 인생을 채워갈 수 있지 않겠는가. 박근형은 딸들에게는 죄인이라 표현을 잘 못하지만 솔직한 사랑의 감정이 자식 앞에 용감하게 서게 만들었다. 이들의 마음이 순수하다면 결국 이들 자식들의 마음을 녹여낼 수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티격태격 싸우고 좌충우돌 부딪히며 성장해가는 청춘의 사랑도 충분히 재미있다. 이상엽은 취업이 안돼 가장 힘든 시기에 만난 홍수현과 결국 이별했다. 그러다 취업해 만난 팀장 신다은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들은 최근 안타깝게도 마음을 정리했다. 홍수현이 수수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서지석이 신다은의 친오빠이기 때문이다. 각각 첫사랑, 친오빠를 위해 사랑을 양보한 것이다.
아버지(박근형)에 대한 실망으로 완벽한 남자를 원해 결혼했던 장녀 유호정이 남편 김승수와 오해와 갈등을 거쳐 새롭게 시작하는 결혼생활 또한 공감을 준다. 또 둘째 딸 한고은은 믿었던 아버지의 외도로 독립해 살면서 유부남 펀드매니저 조연우와 불륜관계에 빠지며 아버지를 괴롭히는 일이라면 뭐든 하고 싶었지만, 결국 현실을 직시하고 아버지의 가정으로 돌아온다.
박근형ㆍ차화연과 서지석ㆍ신다은의 부모인 최정우-유지인 등 중견배우 외에도 홍수현ㆍ이상엽ㆍ서지석ㆍ신다은 등 젊은 연기자도 모두 안정된 연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차화연의 전 남편이자 홍수현의 부친인 강석우는 오지랖 밉상 속물 캐릭터이고, 차화연의 재산을 노리는 아들 서동원-오나라 부부도 속물 캐릭터지만 그다지 밉지 않다.
이런 가족드라마는 고리타분하고 보수적 색채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불륜이나 갈등 상황에 처한 인물의 심리를 세밀하게 보여주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때로는 심리교과서 같기도 하다. 가족간에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인 모습을 그리면서도 화합의 방향으로 가고 있어 좋은 느낌을 준다. 시청자도 서서히 ‘착한’ 이 드라마의 진가를 알아가는 중이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