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방드라마, 고독한 당신의 정신적 허기를 달랜다

미국 CNN은 최근 한국의 ‘먹방’ 열풍에 주목했다. ‘한국의 온라인 트렌드: 귀여운 소녀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통해서다. CNN은 국내 대표 1인 방송 아프리카TV에서 촉발된 이른바 먹방 열풍에 대해 “1인 가구의 증가와 그들의 외로움, 과도한 다이어트 붐이 한국에서 ‘먹방’의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 외롭고 굶주린 사람들이 먹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고 분석했다.

정말 그랬을까. 스크린에선 하정우(황해)가, 예능에선 윤후(MBC 아빠!어디가?) 중심으로 인기를 모으던 ‘먹방’은 드라마로 자리를 옮겼다. 국내 최초로 시도된 먹방 드라마가 케이블채널 tvN의 ‘식샤를 합시다’다.

‘식샤를 합시다’는 1인 가구 드라마를 표방하며 ‘공감’을 키워드로 내세워 ‘먹방’ 소재를 끌어왔다. 


연출을 맡은 박준화 PD는 “한국 드라마에선 전통적으로 식사 코드가 많이 등장해 갈등요소의 시발점이 됐고, 가족 화합의 자리가 되기도 했다”며 “ ‘식샤를 합시다’에선 잘 알지 못하는 서먹한 사람들의 관계가 식사를 통해 좀더 가까워지고, 외로운 사람들의 고독함이 사라져가는 변화에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혼자 사는 사람들이 음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해 나가는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그 매개체는 아이돌그룹 비스트의 윤두준이 연기하는 보험설계사 캐릭터를 통해 나타난다. 드라마에서 윤두준은 유명 맛집 블로그를 운영하는 ‘식샤’님으로, 이수경은 이 블로그의 열혈팬인 동시에 이웃사촌으로 마주한다. 두 사람은 유난히 같은 식당에서 자주 만난다. 이 억지스러울 수 있는 우연은 ‘블로그’라는 매개를 통해 ‘빈번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도록 그렸다는 것이 박 PD의 설명이다. 


의도야 그렇지만, 먹는 장면과 음식을 드라마 안으로 끌어오는 것은 꽤 까다로운 일이었다. 심지어 먹방 드라마로는 첫 시도였기에 제작진의 고민도 컸다. ‘식샤를 합시다’의 경우 드라마 초반엔 배우 한 사람이 ‘맛깔스럽게 먹는 모습’을 주로 담아왔지만, 신선했던 그림이 시청자에게 익숙해지자 드라마가 지루해진다는 것을 제작진이 먼저 간파했다.

박 PD는 이에 “드라마 의도에 맞게 혼자가 아닌 함께 음식을 먹는 형태로 바꿨다”며 “여러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땐 서로의 리액션이 나오고, 음식을 통해 관계의 따뜻함이 보이게 된다. 식사를 하는 사람끼리 교감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인터넷을 통해 공개된 먹방 영화 ‘출출한 여자’ 역시 1인가구의 일상적인 이야기 안에 당장이라도 뛰쳐나가 먹을 수 있는 ‘평범한 음식’을 식탁 위로 올린 대표작이다.

음식을 돋보이게 하는 촬영 노하우도 당연히 존재했다. 일단 기존 드라마와는 다른 장비가 동원됐다. 혼자 몰입해 음식을 먹는 배우의 근접촬영을 위해 미니 지미집(크레인카메라)을 활용했고, 고기를 굽는 장면에선 고속카메라를 사용했다. 인물의 선이 따뜻하게 표현되는 알렉사 카메라를 쓰는 것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담아내기 위한 박 PD의 연출 노하우였다. 먹방드라마에서 시각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청각이었다. 이에 ‘식샤를 합시다’에선 찌개 끓는 소리, 고기 굽는 소리는 물론 식기가 부딪히는 소리까지 극대화해 드라마에 입혔다.

드라마에선 등장인물이 서로의 음식 철학을 논하는 장면이 꽤 흥미롭게 등장한다.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된장찌개와 나물반찬이 고작인 엄마의 비빔밥, 뽀얀 속살을 내놓은 두부와 적당히 잘 삶아진 돼지고기나 노릿한 장어구이를 앞에 두고 윤두준은 연방 카메라와 대화를 나눈다. 촬영을 시작하면 배우는 50초 분량의 먹는 장면을 담기 위해 밥 한 공기 이상을 먹어치운다.


본격적인 ‘먹방’은 아니라도 SBS 월화드라마 ‘따뜻한 말 한 마디’에도 음식은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드라마에서 김지수의 시어머니로 나오는 추여사(박정수 분)는 굉장히 까탈스러운 식성을 가진 중년여성이다. 시어머니는 쿠킹클래스에 다니는 며느리에게 매일같이 ‘망고처트니’와 같은 진기한 음식을 주문하고, 이 별난 시어머니는 “왜 이렇게 입맛이 없냐”며 돼지갈비를 입에 문다. ‘식탐’이 상당한 추여사의 명대사가 있었다. “내가 왜 이렇게 먹는지 알아? 먹는 게 남는 거야!” 채워지지 않는 ‘정신적 허기’를 음식으로 충족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드라마 평론가인 윤석진 충남대 교수는 이 점에 주목했다.

“ ‘따뜻한 말 한 마디’에서 추 여사 캐릭터는 사람에게서 충족돼야 하는 정신적 허기를 물리적 음식으로 충족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며 “한국문화에서 음식은 가족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이며 인물의 갈등관계를 치유하는 양가적인 기능을 하고 있는데, 현대사회에서 가족이 둘러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은 어느샌가 판타지가 됐다. 현실이 아닌 상태의 잃어버린 풍경이 드라마를 통해 재현되며 대리충족을 하고 있다”고 풀이했다.

고승희 기자/shee@heraldcorp.com

[사진제공=tvN, SBS]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