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2일’시즌3에서 갑자기 살아난 이유 “감성ㆍ사람에 집중”

[헤럴드경제=서병기 기자]KBS ‘1박2일’ 시즌3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 강호동과 나영석 PD가 있던 시즌1이 ‘1박2일’의 호황기였다. 재미나 강도 면에서 약해졌고 게임은 더 늘어났던 시즌2는 시청자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 당시 ‘1박2일’은 공영방송 KBS를 대표할 만한 예능이긴 했지만 갈수록 ‘김’이 빠져버렸음에도 폐지할 수 없는 사정을 지니고 있었다. 시즌3는 그런 우려 속에서 출발했다.

시즌3는 첫회부터 더 재미있어졌다. 방향은 시즌1으로의 복귀였다. 나영석 PD 밑에서 조연출로 시작한 유호진 PD가 맡았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유 PD는 섣부른 차별화를 택하는 대신 여행이 줄 수 있는 감성과 사람에 집중했다.

3개월이 돼가고 있는 시즌3는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할 수 있다. 단발 호평이 아닌 유호진 PD와 멤버들이 만드는 프로그램 분위기와 느낌에 시청자들은 호감을 보내고 있다.

‘1박2일’ 시즌3는 ‘여행하는 나’를 만날 수 있게 해주고, ‘사람’이 보인다는 게 특징이다.[사진=KBS]

지난달 12일 방송된 ‘경기도 북부투어’의 지옥체험은 스토리가 있는 여행이었다. 유 PD는 “멤버 중 한 명(데프콘)이 쉽게 하면 안 된다, 힘들게 해달라고 부탁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덕분에 ‘쓰리쥐 형제’ 캐릭터까지 탄생됐다.

지난 9일과 16일 연이어 방송된 서울시간여행편은 모처럼 ‘1박2일’의 레전드로 기록될 만한 기획물로 남을 것 같다. ‘1박2일’ 시즌3는 유호진 PD가 키를 쥐고 있음이 증명됐다. ‘꽃할배’와 ‘꽃누나’가 출연자 못지않게 나영석 PD의 존재가 중요한 것과 마찬가지다. 서울시간여행은 기획이 좋으면 일부러 웃기려고 노력을 안 해도 재미와 감동이 따라온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기적처럼 잠드는 1년 중 하루 설날. 빌딩과 인파 속에 가렸던 낯선 서울의 얼굴을 찾는 단 하루의 마법 같은 시간여행이라는 자막이 올라올 때만 해도, 그저 평범한 아날로그적 감성을 찾아 떠나는 예능인 줄 알았다. 하지만 서울시간여행은 평소에는 바빠서, 사람들이 많아서 도저히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아올린 서울이라는 공간이 ‘나’에게 주는 감성을 반추할 수 있게 해주었다. 거기에는 따뜻함도 있었고 짠함도 있었다.

여행은 많은 곳을 둘러본다고 해서 효과가 나는 게 아니다. 그것은 ‘구경하는 여행(Sightseeing) 정도는 될지 모른다. 하지만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자아와의 대화를 가능하게 하는 실존 여행은 아니다. 여행을 하는 ‘나’의 이야기가 빠져있고, 내가 봐야 하는 대상들만 잔뜩 있는 여행일 뿐이다.

유호진 PD의 서울시간여행편은 평소 우리가 놓치고 있는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스팟’들을 둘러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여행자의 감성과 경험이 묻어나는 주관적 스토리텔링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그렇게 해서 여행자와 시청자는 ‘나’를 돌아볼 수 있고 각박한 현실을 떠나 추억과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서울시간여행 후반부는 25년 동안 ‘가족오락관’을 진행한 국민MC 허참과 함께 남성팀과 여성팀으로 나뉘어 인기 코너를 재현했고, 이 과정에서 향수를 자극했다. 배우 유인나가 진행하는 라디오 ‘볼륨을 높여요’ 스튜디오에 깜짝 난입한 것도 예측 불가능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멤버 두 명씩 짝을 지어 명동성당과 남산, 창경궁으로 가게 해 환희와 열정, 고독을 테마로 각각 사진을 찍어오라고 주문한 미션은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과거와 만나게 함으로써 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마지막에는 제작진이 멤버들의 현재 모습과 같은 장소에서 찍었던 부모의 과거 모습과 합성한 사진을 선물로 내놨다.

김주혁은 자신이 사진을 찍었던 명동성당을 배경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인 배우 김무생과 어머니가 젊었을 때 찍었던 사진을 KBS 편집실에서 보고 비로소 가슴이 먹먹해졌다. 자식을 사랑했지만 엄격했던 아버지를 만나는 짧은 시간, 이런 게 실존적인 ‘나‘를 만나게 되는 순간이다. 차태현도 남산 팔각정에서 부모님이 젊었을 때 찍은 사진을 보고 과거를 회상했다. 아버지는 예쁜 어머니를 계속 따라다닌 끝에 목적을 달성했다는 일화를 들려주었다.

김종민은 사진을 찍었던 창경궁의 나무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던 젊은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여서 눈물이 핑 돌 수밖에 없었다. PD가 김종민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으냐고 물었을 때 김종민이 “오래 옆에 있는 아빠”라고 답했을 때는 시청자들도 짠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 자기 이야기를 잘하지 않는 김민종이 ‘1박2일’에서 가장 자신의 사적이면서도 진솔한 모습을 잘 드러낸 순간이었다. ‘1박2일’ 서울편이 레전드라고 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웬만해서는 김종민에게서 이런 멘트를 끄집어낼 수 없다. 서울시간여행편은 ‘나’를 돌아볼 수 있고, 한 템보 느리게 갈 수 있는 감성을 제공해주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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