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뱅크 민 김 행장, 커먼웰스(cbb) 조앤 김 행장, 태평양은행 조혜영 행장이 그 주인공. 이들은 각각 2006년 나라은행장, 2008년 윌셔은행장, 그리고 2011년 태평양 은행장에 취임하면서 3대 여성행장 시대를 열었고 이후 지금까지 한인 은행가를 들었다 놨다 하는 실력가로 자리잡고 있다.
그 어느 때 보다 ‘여성리더’가 돋보이는 시대지만 ‘여성행장’이기 때문에 받는 스포트라이트는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시선이 늘 있기 마련이고 세상은 이들을 ‘수퍼우먼’ 내지는 ‘여장부’로 이미지 메이킹 했다.
‘행장’보다 ‘여성행장’이기 때문에 더 드라마틱하게 보이는 그녀들. 모두 30여년 전 은행 말단직으로 시작한 한인은행가의 살아있는 역사이고 아이들을 키우며 치열하게 30, 40대를 살아 온 워킹맘들이다치열하고 냉혹한 은행가에서 가장 높이 오른 3인의 여성행장들에게 특별한 인터뷰를 요청했다.
스포트라이트 너머 궁금했던 이야기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들은 ‘수퍼우먼’보다는 ‘후천적 노력형’, ‘여장부’보다는 ‘천상여자’에 가까웠다.
◇ ‘수수하고 털털하게’ 제2의 인생사는 민 김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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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행장 1호’라는 타이틀을 꼬리표처럼 달고 다니는 오픈뱅크의 민 김 행장.
중학생이었던 1974년 이민 온 1,5세로 USC에서 재정학을 전공하고 1982년 LA윌셔스테이트 뱅크오퍼레이션 오피서로 뱅커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한미은행, 다시 나라은행으로 옮겨 2006년 최초의 여성행장이 되기까지 최초 여성지점장, 최초 여성전무, 한인여성 최고연봉 은행가 등의 신기록을 세워 온 주인공이다.
170센티가 훌쩍 넘는 큰 키, 은행 광고모델로도 자주 등장할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인 민 김 행장은 그야말로 모든 여성 뱅커들의 로망이었다.
“옛날에는 한 미모했었지. 그럼 뭐하나. 이제는 할머니인데.(웃음) 옛날엔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신경도 많이 썼지만 나이가 먹어가니 덧없다. 이제는 편한 게 최고다. 나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남편 김기준 변호사와의 사이에 둔 1남1녀는 모두 장성해 슬하를 떠났고 이제는 손녀딸의 재롱에 시간가는 줄 모르는 ‘젊은 할머니’다.
3,40대였을 때는 나름 과감한 패션도 즐겼다는 김행장이지만 요즘은 그레이가 가장 좋다. 하이힐의 높이도 낮아지고 악세서리도 귀찮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상대방의 시선이 분산되는 것이 싫은 이유도 있다.
“은행장은 내 오랜 꿈이었다. 재정학을 전공한 것도 그 때문이었으니까. 아이들을 키우면서 일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시부모님들의 도움이 컸다. 그런 점에서 나는 운이 좋았다”출근길은 늘 설레었고 은행에서 일하는 순간 순간이 즐거웠다는 김 행장은 어쩌면 타고난 뱅커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들이 뭔가 드라마틱한 스토리 하나쯤은 기대하며 여성으로서 어려웠던 점을 물어오지만 그 때 마다 김 행장의 대답은 한결같다.
“별로 없었다. 고만고만한 어려움은 어느 직장에나 있는 것이고 게다가 은행은 여성이 능력을 발휘하기 좋은 환경이다. 애정이 있으면 열심히 일하게 되고 열심히 일하면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그러면 인정받는 거다”그렇게 이룬 은행장의 꿈, 40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기쁨은 잠깐이고 허탈감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돈과 명예로 채워지지 않는 것이 뭘까 한참 고민하던 즈음 오픈뱅크를 맡게 됐다. 이곳에서는 나 개인의 성공이 아닌 더 가치 있는 성공을 꿈꿀 수 있을 것 같았다”오픈뱅크는 독실한 크리스찬인 민 김 행장이 신앙관이 고스란히 담긴 기업이다. ‘하늘 문을 연다’는 의미의 은행명도 김 행장의 아이디어다. 열린청지기 재단을 만들어 매년 이윤의 10%를 사회로 환원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컴패션을 통해 30명의 아이들을 후원하고 있다.
“2014년 목표? 사회환원 100만 달러다. 새로운 꿈을 꾸는 지금 어느 때 보다 행복하다. 매일 다시 가슴이 뛴다. 32년 전 그때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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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민 행장은…
-1982년 윌셔은행 입사
-1985년~1995년 한미은행
-1995년~2010년 나라은행
-2010년 오픈뱅크 은행장 취임
-좋아하는 것: TV불후의 명곡, 영화 메디슨카운티의 다리, 사우나에서 친구와 수다떨기
-자신을 위한 투자: 2주에 한번 피부관리
◇맏언니 같이 푸근한 조앤 김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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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김 행장은 지난 2008년 윌셔은행 행장에 취임하며 한인사회 2호 여성행장이 됐다.
고려대학교 영문학과(73학번) 출신으로 지난 78년 가주외환은행(PUB)의 전신인 ‘캘리포니아 코리아 뱅크(CKB)’에서 은행업무를 시작했다. 윌셔은행에 이어 2011년 커먼웰스 은행장에 올랐다.
조앤 김 원장은 한인 은행가의 맏언니 같은 인물이다.
은행권에 가장 오랜 시간 몸을 담고 있었을 뿐 아니라 조언을 구해오는 여성 뱅커들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해주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여성뱅커들의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일과 가정 사이에서의 발란스다.
“정답은 없다. 결국은 모든 것이 개인의 선택인 것이다. 심사숙고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내가 보람 있다고 느끼는 것을 찾아야 한다. 가족들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김행장은 자신은 일에 포커스를 맞춘 쪽이라고 솔직히 털어놓는다.
다행히 딸과 아들은 일하는 엄마를 이해해주고 자랑스러워 했고 딸은 경주마 전문 트레이너로 아들은 의사로 잘 자라주었다. 그래도 늘 미안함은 있다.
“지나 온 시간에 유일하게 후회되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아이들과 놀아주고 싶다”노스리지에 거주하고 있는 조앤 김 행장의 일상은 대부분 일에 집중되어 있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아침운동만은 거르지 않는다. 매일 아침 짐에서 하는 운동이 올해로 20년 째다.
패션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는 50점, 댄디한 바지정장이 멋지다고 생각하는 터에 좀 인색한 점수다.
“비즈니스 룩을 쉬운데 평상복은 정말 쉽지 않다. 캐주얼을 입으려면 늘 대략난감이다(웃음)어쩌다 보니 명품백 한 두 개는 있어 딸에게 물려주고 싶은데 어찌된 일인지 딸은 나보다 패션에관심이 더 없다. 대신 딸과는 와인으로 통해서 가끔 술친구가 되기도 한다”몸과 마음의 재충전은 좋은 사람들과의 여행으로 얻는다. 가장 좋아하는 곳은 데스벨리. 김 행장은 데스벨리를 제대로 보고 싶다면 자동차가 아닌 하이킹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평소 직원들에게 철저한 자기 관리와 목표설정에 대해 강조하는 조앤 김 행장은 리더로서의 자신의 역할이 ‘조언자’라고 말한다. 젊은 뱅커시절 좋은 조언자가 절실했던 경험에서 나온 것이다.
맏언니 같은 조앤 김 행장의 인기는 사진촬영을 하는 동안 확인할 수 있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큰 웃음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며 궁금해하던 여직원들이 사진 촬영이 시작되자 주위로 몰려들어 한 마디씩 거든다.
‘행장님 머리를 귀 뒤로 넘기셔야 더 어려 보여요”우리 행장님은 왼쪽 얼굴이 더 예뻐요’그러고 보니 유난히 긴 속눈썹과 도자기 피부를 소유하고 있다.
“몰랐나. 내가 사진보다는 실물이 더 낫다”라는 말에 모두가 한바탕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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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김 행장은…
-고려대학교 영문학과(73학번) 출신으로 지난 78년 도미
-1978년 ‘캘리포니아 코리아 뱅크(CKB)’에 입사(가주외환은행의 전신)
-1981년 윌셔은행 론 오피서
-1992년 한미은행
-1999년 윌셔은행으로 복귀, CLO, CCO 등 역임
-2011년 4월 커먼웰스은행장
-좋아하는 것: 하이킹, 딸과 와인 마시기
-나를 위한 투자: 여행
◇후레지아 꽃을 좋아하는 조혜영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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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태평양 은행장에 취임하면서 여성행장 3인 시대를 연 조혜영 행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전형적인 여성 리더로 꼽힌다.
지난 1983년 가주외환은행(PUB) 텔러를 시작으로 뱅커인생 31년째다. 이 중 1986년부터 2003년까지 17년 동안 한미은행에서 근무하며 지점장과 부행장 등을 거쳤고 태평양 은행은 2003년 창립부터 함께 했다.
뭐든 한번 결정한 것은 여간해서는 바꾸지 않는 성격이다. 세련된 숏커트 헤어스타일은 십 수년 째이며 물론 한 미용실에서다. 팔레스버디스에 거주한지도 20년이 넘는다.
조혜영 행장은 패션지 편집장이라 해도 어울릴 만큼 세련된 패션 센스를 가지고 있다.
기본적으로 스커트와 자켓을 매치한 오피스룩을 즐기지만 여성스러운 칼라의 블라우스와 작은 악세서리로 포인트를 준다.
“쇼핑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매번 다른 칼라에 도전해 보려 하지만 결국 블랙이나 화이트를 고른다. 옷장을 열면 죄다 그게 그거다(웃음)”로맨틱 코미디 영화와 후레지아 향을 좋아하는 ‘천상여자’이면서 일에 있어서 만큼은 늘 담대하게 도전을 즐겨왔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끊임없는 목표설정도 조 행장의 성공요인이었다.
“3년 단위로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 달려왔다. 은행은 비교적 남녀가 평등하게일할 수 있는 곳이기는 하지만 가족의 도움 없이는 힘들다. 나 역시 남편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은 모두 남편의 헌신적인 이해와 사랑이었다”조혜영 행장은 현재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아내의 커리어를 위해 많은 부분을 희생해 왔던 남편 조성기씨가 지난해 지병으로 곁을 떠난 것이다. 가장 든든한 후원군이자 지지자였던 남편의 죽음은 감당하기 힘든 슬픔이었다.
“무너질 것 같은 나를 지탱해 준 것은 은행과 직원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하루하루 내게 허락된 일터가 참 감사하다”예상치 못했던 시련은 조행장의 인생관도 바꾸어 가고 있다.
요즘은 ‘행복전도사’가 되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을 일을 하고 주위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며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살자고 전하고 있다.
“휴가에는 늘 함께 여행을 갔었는데 지난 휴가 때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남편과 함께 걷던 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밀려드는 상실감은 여전히 크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겠나”태평양 은행에서 조혜영 행장이 차지하고 있는 의미는 크다.
10주년이었던 지난해 태평양 은행은 오픈 이래 최고의 성장을 기록했고 2천2백만 달러의 흑자를 이루며 확고한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 받고 있다.
“2014년은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해다. 나도 은행도 새로운 마음으로 뛴다는 각오다. 상장은행과 1빌리언 은행을 향해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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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영 행장은…
-1983년 가주외환은행(PUB) 텔러 입사
-1986년~2003년 한미은행 올림픽 지점장, 부행장
-2003년 태평양 은행 전무, 최고운영책임자(COO)
-2011년 태평양 은행 행장 취임
-좋아하는 것: 후레지아 꽃, 해안가 산책
-나를 위한 투자: 독서, 여행
하혜연 기자·사진/이은호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