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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경 선교사(59)는 케냐의 오지마을 ‘키틀(Kitele)’에 살고 있는 자비량 선교사다.
미국 공립학교 사무직을 퇴직하고 나오는 월 1500달러의 연금은 고스란히 현지 초등학교을 운영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나는 돈 쓸 일이 없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띄면 먹고 마을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 학교를 유지하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1500달러로 학교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 마을에 방 하나를 세 내어 살면서 그들과 똑같이 하루 두 끼 콩과 옥수수떡을 먹는다. 유일하게 함께 못하는 것이 물 마시는 일이다. 마을 사람들은 인근 연못 물을 퍼서 마시지만 양 선교사는 거의 물을 마시지 않고 생활한다. 가끔 얼음이 들어간 시원한 콜라가 가장 생각난다고.
어떻게 아프리카 선교사가 되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숨을 고르게 된다. 가슴 깊숙이 묻어 놓은 그리운 이름을 떠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에 나가있던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27세, 세상을 등지기에는 너무 젊은 나이었다.
슬픔에 이어 죄책감이 무섭게 덮쳐왔다. 무슨 일을 저지를 듯 했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찾은 ‘치유집회’에서 하나님을 만났다. 완전하신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오기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서도 운전을 할 때나 길을 걸을 때도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삶이 힘들어 보일수록 우리 아이도 저렇게 힘들었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디서 나온 담대함 이었을까. 그는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 주변을 정리했다.
“달랑 가방 두 개에 다 들어갈 것을, 그 동안 많이도 갖고 살았더라. 2011년 그렇게 미국을 떠났다. 두려움은 없었다. 하나님이 이끄시는 대로 가겠다는 각오였고 그러실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양 선교사는 가는 곳곳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사람이 있었다고,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버스와 오토바이로 10시간을 가야 하는 오지 ‘키틀’까지 오게 된 것은 완벽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다고 고백한다. 전기도 수도물도 없는 곳이다.
“마을에 와 보니 폐교 직전의 초등학교 ‘무안가자’가 있었다. 30년 넘게 일했던 곳이 학교였는데… 학교일이라면 자신 있었다. 그게 2년 전이다. 지금은 학생 140명에 선생님이 두 분 계신다. 월급이 작아선지 선생님들이 자주 바뀌는 것 외에는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책상과 의자도 없는 교실에서 뭐가 그렇게 행복한지(웃음)”
아이들은 그를 ‘Mom’이라고 부른다. 다시는 웃지 못할 것 같았던 자신을 웃게 해준 아이들이다.
양수경 선교사는 비자문제로 미국에 나온 김에 아이들을 위한 칠판과 책상과 의자를 마련해 갈 참이다. 늘 흙 바닥에 앉아서 수업을 하니 아이들 대부분이 기관지가 좋지 않다.
“담대하게 도와주십시오,하면서 다니고 있다. 나는 가난하고 연약하고 줄이 없어서 오히려 감사하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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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혜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