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애국주의 벗은 할리우드 영웅의 고뇌…슈퍼히어로 진정한 진화는 지금부터

말하자면 ‘아이언맨’은 ‘강남스타일’의 오빠이고 젠틀맨이다. 돈 좀 있고, 놀 땐 노는 화끈한 ‘싸나이’, 근육보다 ‘기술’이 울퉁불퉁한 남자다. 반면 ‘캡틴 아메리카’(이하 ‘캡틴’)는 도통 놀 줄 모르는 ‘범생이 스타일’에 유머감각 따위는 비집고 들어갈 틈 없이 온몸이 근육으로 똘똘 뭉친 남자다. 결정적으로 ‘아이언맨’은 대기업의 오너이자 무기를 개발하는 천재과학자이고, ‘캡틴’은 미국 정부가 고용하고 개발한 군인이자 무기 그 자체다.

그런데, 이제 ‘캡틴’이 고용주로부터 독립해 ‘프리’를 선언하고, 전에 없던 유머감각도 발휘하며, ‘모범생으로 살아 무엇하랴’는 ‘존재론적 고민’에도 빠진다. 그 와중에도 ‘헬스 트레이너’급의 근육과 ‘일진’급의 싸움 실력은 더욱 강력해졌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감독 조 루소, 안토니 루소)의 얘기다.

‘캡틴’(크리스 에반스 분)은 왜소한 약골 청년이었지만 누구보다 애국심이 투철했던 스티브 로저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으로 입대했다가 정부의 ‘슈퍼 솔져 프로그램’을 통해 초인적인 신체 능력을 갖게 되면서 새롭게 탄생한 슈퍼히어로였다. 종전 후 캡틴은 냉동상태로 보존됐으며, 인류를 위협한 세력과 맞서기 위해 슈퍼히어로들이 모인 지난 2012년작 ‘어벤져스’에서 70년 만에 다시 깨어났다. 


‘윈터 솔져’편에서 캡틴은 이제 지구방위군인 ‘쉴드’ 소속 조직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런데 자신의 직속 상관인 닉 퓨리 국장(사무엘 L.잭슨 분)이 습격을 받고 “아무도 믿지 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 채 죽는 사건이 일어난다. 쉴드의 상부기관 격인 세계평화위원회 사무총장 알렉산더 피어스(로버트 레드포드 분)는 캡틴을 암살자로 지목하고 그를 제거하기 위해 쉴드의 화력과 군사력을 총동원한다. 캡틴은 닉 퓨리의 오른팔이나 다름 없었던 구소련 KGB 출신의 동료 블랙 위도우(스칼릿 조핸슨 분)과 함께 쉴드를 둘러싼 비밀을 추적하는 한편, 알렉산더 피어스와 맞선다. 그 과정에서 ‘쉴드’가 나치 세력 ‘히드라’에 의해 장악돼 있음을 알게 된다.

캡틴은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쉴드의 존재와 자신의 운명에 대한 회의에 빠진다. 새로운 적수도 맞는다. 캡틴 버금가는 힘을 지닌 ‘윈터 솔져’(세바스찬 스탠 분)다. 조력자도 얻는다. 날개장치를 달고 자유롭게 날 수 있는 ‘팔콘’(안소니 마키 분)이다.

닉 퓨리 국장의 죽음을 계기로 미국의 비밀정부기관인 ‘쉴드’와 캡틴이 결별하게 되면서 영화는 미국의 애국주의적인 색깔을 벗는다. 캡틴이 상대하는 ‘히드라’는 “인류는 자유를 감당할 수 없다, 그들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도록 해야 한다”는 발상으로 지난 수십년간 사건을 일으켜 왔던 세력인데 영화는 ‘하일 히드라!’라는 구호를 통해 노골적으로 나치즘이나 전체주의의 망령을 불러내며 세계의 역사가 그들의 만행으로 얼룩졌다는 일종의 ‘음모론’을 끌어들인다. 캡틴이 입은 수트의 기능과 파워, 디자인이 세련되고 강력해졌으며 격투 액션 역시 한층 화려해지고 힘도 더해졌다. 끊임없이 여자를 소개해 주겠다며 놀리는 동료 블랙 위도우에 능청스러운 농담으로 받아칠 만큼 캡틴의 유머감각도 늘었다. 한마디로, 하루가 멀다하고 새 버전이 나오는 스마트폰만큼이나 끊임없이 ‘슈퍼히어로’를 업그레이드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의 능력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형석 기자/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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