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요즘 풀러튼 사는 ‘김여사’는 피곤하다.
자장면을 먹을까 짬뽕을 먹을까 했던 고민은 고민도 아니었다. 비치와 멜번 사거리에서 매번 운전대를 잡고 망설인다. 배추 한 단을 집어도 길 건너는 더 싸지 않을까 소심해지고 실제로 쇼핑중인 카트를 비우고 자리를 옮기기도 한다. 요즘엔 아예 고기와 생선은 이쪽에서, 야채와 과일은 저쪽에서 양다리 쇼핑을 하느라 체력이 달릴 지경이다. 고단한 것은 몸 뿐만이 아니다.
30년을 풀러튼 토박이로 살고 있는 덕분에 한 다리 건너면 모두 지인이다. 십 수년 단골집 주인장들 눈치 보랴, 가고 싶어도 못 가고 먹고 싶어도 못 먹는 경우도 있다.
지난주에는 새로 생긴 중국집 짬뽕 맛 좀 보러 갔다가 단골집 주인에게 ‘딱 걸렸다’. ‘다른 볼일 보러 왔다가…’라고 둘러대며 흡입한 짬뽕이 무슨 맛이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내 돈 내고 내가 먹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다. 업소들 간의 과잉경쟁이 ‘진상손님’들만 낳는다는 말도 수긍이 간다.
가격, 서비스, 맛, 품질에 대해 조언과 건의 대신 ‘여기 아니면 갈 데 없냐’식의 짜증이 먼저 나온다.
골프 회동 후 가진 식사자리에서 ‘김여사’일행은 막무가내로 ‘공짜 서비스’를 우겼다가 관철되지 않자 ‘다음에는 길 건너로 가겠다’며 투털 대고 나왔다.
우아함이 김희애 뺨쳤던 ‘김여사’였건만, 어느새 진상손님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다며 하소연한다. 오지랖 10단인 ‘김여사’는 이제부터 바람직한 한인상권의 발전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기로 결심했다.
마켓이든 제과점이든 중국집이든, 번갈아 이용하며 공평히 애정을 분배할 것이며 지나친 가격경쟁으로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거나 근거 없는 루머를 퍼뜨리며 상도를 어지럽히는 업소에 한해서는 한국 아줌마들의 매운 맛을 보여줄 작정이다. 뿐인가. 서툰 영어실력이지만 앞집 사는 ‘미세스 스미스’에게는 한인업소 홍보 도우미로 적극 나설 것이라 굳게 다짐한다.
그녀는 ‘비치길 전쟁터’에 뛰어든 평화주의자다. 알아주는 이 하나 없어도.
하혜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