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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긋한 봄내음이 가득한 소록도에서 본지가 처음 박준 원장을 만났을 때 우리가 익히 알던 화려하고 세련된 미용사가 아닌 옆집 아저씨 같은 소탈한 모습이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다. 확실히 전보다 편안해 보이는 그는 “소록도는 삶의 벼랑 끝에서 희망을 되찾게 해준 소중한 곳”이라는 말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그 사건 이후 두문불출 하고 있었어요.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했죠. 처음엔 백두대간을 타볼까 아니면 어떤 것으로 힘듦을 극복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지인이 소록도에 가서 봉사활동 하면 어떻겠냐고. 그래서 무턱대고 소록도에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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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도 생각했을 만큼 박 원장에게 지난 몇 년간은 인생의 고비였다. 하지만 운명처럼 소록도의 품에 안기고 난 뒤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었다.
“처음 국립소록도병원에 왔을 때 나를 버리자고 마음먹었죠. 이름도 박준에서 본명인 박남식으로 돌아가고 수염도 밀고 머리도 평범하게 자르고 했더니 아무도 날 몰라보더라구요. 본연으로 돌아갔더니 오히려 몰라봐서 기분이 이상했죠.”
박 원장은 봉사라는 것이 무턱대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엇보다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중요한 것들부터 차근차근 해 나가기 시작했다. 환자들 병수발부터 식사 돕는 일까지. 또 봉사교육도 틈틈이 받으면서 전문적인 지식도 쌓았다. 그러다가 자신의 장기인 미용으로 기술봉사를 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그 일환으로 헤어 용품 전문업체 일진 코스메틱도 다양한 기증품을 전달하며 박준의 뜻깊은 봉사활동에 동참했다.
“마을에서 머리카락을 자르기도 하고 병동에서 환자들 목욕 전에 자르기도 하고 좀 건강한 환자의 경우는 미용실 하나 있는데 거기 가서 자르기도 했어요. 사실 처음엔 무서웠어요. 미용사의 직업 특성 상 장갑도 못 끼고 직접 피부끼리 맞닿을 수밖에 없는데 한센병이 전염된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교육을 통해 한센병이 전염병이 아니고 환우들도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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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소록도병원의 봉사활동에 익숙해지면서 앞일에 대한 걱정도 지난날에 대한 자책도 안 하게 됐다. 잡생각을 안 하니 자연스럽게 밤마다 괴롭히던 불면증도 나았다.
“하루 종일 어르신들 머리칼을 다듬다 보면 자기 걱정할 시간이 없죠. 그들은 내가 누군지도 모르거든요. 소록도분들이 멋 내는 걸 정말 좋아해요. 어떻게 잘라달라는 주문도 복잡하죠. 원하는 대로 잘 해주니까 굉장히 만족해했죠. 저도 기뻤어요.”
박 원장은 “온 동네가 내 고향 집 같다”며 어느새 소록도 사람이 다 된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인터뷰 중간에도 박 원장을 알아보고 일상적인 안부를 건네는 분도 계셨다. 그만큼 그동안 박 원장과 소록도 사람들이 얼마나 끈끈한 정을 쌓았는지 알 수 있었다.
“오래 있다 보니 사람들과 정이 들더라고요. 환자들과 가족이야기도 자주 나누고. 어떤 분은 닭죽 끓였다고 해서 여러 사람들하고 모여 같이 밥 먹기도 했어요. 또 한 분은 커트하고 나서 다른 분 커트해달라고 부탁해요. 그렇게 자기보다 남을 위하는 분들이 많아서 매번 감동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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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봉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던 박 원장은 산티아고에 같이 가자는 한 봉사자의 제안에 이끌려 지난해 5월 스페인에 다녀왔다. 물론 가기 전에 매일 소록도에서 걷기 연습도 하고 설악산 1박 2일 산행도 다녀오면서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하루 20km씩 걸었어요. 한 일주일 걸으니까 피곤하기도 하고 발바닥도 부르트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런데 순례길을 800km 정도 걸으면서 새롭게 태어난 기분이 들더라고요. 오고가면서 수많은 친구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특히 순례길 걷기를 마친 다음에는 학교의 졸업장과 같은 증명서를 발급받는데 기분이 묘하고 감동스러웠어요. 그리고 프랑스로 건너가 비달사순 학교에서 트렌드를 공부하고 돌아왔죠. 정말 뜻깊은 시간들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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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의 순간에서 박 원장은 소록도 봉사와 여행을 통해 삶의 꿈틀거림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의 손이 떨려서 가위질을 못하게 될 때까지 봉사 하고 싶다”며 끝까지 봉사 인생을 이어가고 싶은 소망을 전했다. 그의 작지만 뜻 깊은 소망이 이뤄지길 바라본다.
# 유영달 팀장의 봉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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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 원장의 봉사 활동을 돕고 있는 유영달 봉사팀장은 현재 국립소록도병원의 모든 자원봉사자들을 총괄 관리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그만큼 오랜 시간 소록도 봉사에 힘쓴 그에게서 ‘진정한 봉사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 소록도에서 봉사하게 된 계기는?
“열악하고 소외된 분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사실 예전에 경남 산청 성심원에서 소록도 살았던 분들과 자주 얘기 나누면서 소록도가 궁금해지더라고요. 특히 소록도가 역사적으로 그 상처의 근원지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반년 전에 소록도에 왔어요.”
– 요즘 젊은 세대들의 봉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오는 것만 해도 마음들이 정말 착한 것 같아요. 특히 봉사하러 멀리 미국과 캐나다에서 오는 것 보면 신기해요. 간병인들도 하기 힘든 식사수발부터 기저귀 교체까지 눈 하나 찡그리지 않고 하는 것 보면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 봉사를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일까?
“봉사라는 게 어떤 뜻보다는 좋아서 하는 거죠. 사실 봉사를 하면서 자기가 가진 문제점이라든지 상처 같은 것을 고칠 수 있어서 자연스럽게 마음의 병도 치유되는 것 같아요. 또 본래의 내 모습을 찾는 과정도 얻을 수 있고요. 내가 몰랐던 나쁜 습관 같은 게 보이기도 하고 환자들 통해서 보이기도 하고요. 박준 원장 역시 봉사하면서 마음의 병을 치유했죠.”
– 진정한 봉사란 무엇일까?
“진정한 봉사란 내가 그 사람과 하나가 되는 일체화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가 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박 원장과도 많이 이야기를 나눴죠. 결국은 식사수발을 비롯해 봉사 하는 행위 전반이 일체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유 팀장은 마지막으로 “어렸을 때부터 봉사의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따라서 봉사가 하기 어려운 거창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몸에 스며들어야 한다고 말하며 가족 단위의 봉사자들에 대한 바램을 전하며 끝을 맺었다. 이렇게 박 원장과 유 팀장의 감동적이고 뜻 깊은 봉사 이야기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작은 깨달음을 얻길 소망한다.
온라인 이슈팀기자 /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