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 정재영, 허구이기에 자유로웠고 믿었기에 살아있음을 느끼다

5월 극장가에 영화 ‘역린’의 열풍이 거세다. 지난 1일부터 6일까지 이어지는 일명 ‘황금 연휴’는 ‘역린’에게 200만이 넘는 관객을 선물했다. 이 작품은 배우 현빈의 군 전역 이후 복귀작이라는 사실로 기대를 모았던 작픔이다. 이밖에도 조재현, 정재영, 박성웅, 김성령, 한지민, 정은채 등의 화려한 라인업을 자랑했다.

‘역린’은 정조 즉위 1년, 왕의 암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살아야 하는 자, 죽여야 하는 자, 살려야 하는 자들의 엇갈린 운명과 역사 속에 감춰졌던 숨막히는 24시간을 그렸다. 정조 역의 현빈과 더불어 그의 곁을 항상 지키는 그림자 같은 인물인 상책 역의 정재영 또한 오랜 연기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발산했다.

실존 인물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허구의 인물을 그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법도 하지만 정재영은 도리어 허구의 인물이기에 더 자유로웠음을 밝혔다.


“실제 인물을 연기하는 게 훨씬 힘들어요. 그 인물을 똑같이 재연해 내기는 어려워요. 누를 끼치면 더더욱 안 되죠.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인물이기에 조심스럽고 위험해요. 오히려 허구의 인물들은 뭘 해도 되기에 자유롭게 연기했어요. 게다가 실제 인물은 나중에 연기할수록 더 불리한 것 같아요. 처음에 한 사람이 잘하면 계속 비교 되잖아요.”

그런 이유에설까? 정재영은 작품 속 이미지와 자신이 다름을 인정하며 이를 ‘함정’으로 표현했다.

“배우들은 그런 면이 큰 것 같아요. ‘역린’ 속 상책은 의리 있고 충직한 인물이잖아요. 사랑하는 동생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까지 하는데,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건 자식이나 가족에게 느낄 수 있는 거죠. 그런 면에 있어서 상책은 되게 용기 있는 사람이에요. 저 같은 경우라면 때리기 전에 다 불거에요.”(웃음)

이렇듯 신분을 뛰어넘은 남자들의 우정은 관객들에게 묵직하면서도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 슬며시 ‘브로맨스(bromance)’라는 말을 끌어다 쓰려 했으나, 정재영은 ‘우정’이라는 단어로 이를 정리했다.

“정조와 상책, 상책과 을수의 관계는 우정이죠. 가짜 신하가 진짜 신하가 되거나, 친동생 같은 관계를 보여주려다 보니까 다들 그렇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브로맨스’라는 단어는 저한테 생소해요.”

비범함보다는 평범함을 좋아하는 정재영이기에 뭔가 의미를 찾아내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를 선호했다. 연기에 있어서도 그의 이러한 성격이 잘 드러난다.

“남, 여배우를 떠나 좋은 배우들끼리 연기 호흡을 맞추면 좋은 영화가 나오는 것은 그 안에서 서로에게 좋은 기운을 받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일부에서는 이를 기 싸움이라고도 표현하지만, 저는 ‘기운’이라 생각해요. 서로의 기운을 받아 훨씬 좋아지고 배우들도 힘이 난다고 할 수 있죠. 연기 상대가 하는 말이나 대사들이 저한테 오지 않은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땐 가짜 같이 느껴지면서 힘들죠. 누구와 호흡을 맞추던지 목표는 하나에요. 살아 있는 그 기운을 느끼는 것. 들으려 하고 느끼려하고, 느껴지는 대로 하려고 최대한 노력해요. 스타일에 맞게끔 연기 한다는 건 없다고 생각해요. 진짜냐 아니냐만 있는 거죠. 연기 할 때는 이미 그 캐릭터로 보고 있기 때문에 믿고 하는 거죠.”


야구선수, 북파공작원, 인민군 장교, 조직폭력해, 형사, 소심한 회사원, 환관 등 어느 하나 평범한 캐릭터들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작품 속에 녹아들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진짜’로 믿고 살아있음을 느끼기에 가능하리라 생각된다.

올 상반기 연이어 두 작품으로 관객들과 만남을 가진 정재영. 그는 현재 찾아온 잠깐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중이다. 그는 취미를 갖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며 편안하게 집에서 쉬면서 얼마 전 TV로 봤던 다큐멘터리 설명에 열을 올렸다.

마치 이웃집 삼촌처럼 소탈한 그이기에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 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확신할 수 있다.
조정원 이슈팀기자 /chojw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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