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카, 민화의 매력에 흠뻑 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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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화의 매력에 빠져보세요” 성기순 원장과 제시카

“만화? 카툰?”

“아니. 만화가 아니고 민화!!”

아니나 다를까 ‘민화’에 대한 설명에 제시카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수묵화같이 양반님들을 위한 점잖은 그림이 아닌 서민들의 해학과 풍자가 가득한 독특한 그림이라고 설명하니 알겠다 하면서도 여전히 표정은 ‘아리송해’다.

미주 한국민화협회에서 제시카를 초대했다. 한국 문화 탐방에 나서고 있는 제시카에게 진정한 한국의 멋을 보여주고 싶다는 것이다.

LA한인타운에 위치한 수본민화연구원에 들어서자 성기순 원장과 제자들, 그리고 강렬한 색채의 민화 작품들이 제시카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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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열중하고 있는 제시카 화공

▶성기순: 반갑다. 민화를 본 적이 있는지?

▶제시카: 처음 본다. 동양화나 수묵화는 본 적이 있는데…. 많이 느낌이 다르다.

▶성기순: 물론 그럴 것이다. 민화는 동양화와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가지고 그린 그림이다. 익살스러우면서도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보면 볼수록 그리면 그릴수록 맛이 나는 그림이라고 할까.

▶제시카: 아이들 그림 같기도 하면서…. 밝은 이미지가 아주 마음에 든다. 태어날 아기 방에 걸어두고 싶은 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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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날 아기를 위한 제시카의 첫 민화작품

민화 작품들이 벽을 채우고 있는 수분민화연구원은 마치 전시회장과 같다.

민화 중에서 가장 사랑 받는 그림 중 하나는 ‘일월오봉도’. 임금님이 앉으시던 자리의 뒷 배경으로 익숙한 병풍에 그려진 해와 달이 함께 있는 그림이다.

혼례식장에 가면 빠지지 않는 ‘모란도’ 역시 대표적인 민화의 한 종류다. 크고 화려한 꽃으로 인

해 ‘꽃 중의 왕’이라고 불리며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도’는 10폭 병풍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십장생도’는 장수를 상징하는 10가지 자연으로 이루어진 유토피아를 그린 그림으로, 8폭 병풍에 산과 계곡을 중심으로 소나무, 학, 대나무, 사슴, 거북, 물, 바위, 구름, 불로초, 해 등을 담고 있다.

제시카가 특히 마음에 들어 하는 그림은 담뱃대를 문 호랑이 옆에서 절구를 찧고 있는 두 마리의 토끼. 동물을 좋아하는 제시카 마음에 꼭 들게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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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기순: 민화에는 동물이 많이 등장한다. 호랑이는 영험한 짐승으로 화재, 수재, 풍재를 막아주고 전쟁, 질병, 굶주림의 고통에서 지켜주는 신비한 힘을 상징한다.

▶제시카: 나는 토끼를 너무 좋아한다. 애완동물로도 기르고 있다.

▶성기순: 토끼는 여성을 상징하는 달과 함께 많이 그려진다. 무병장수의 상징이기도 하고 다산, 순산의 의미도 있다.

▶제시카: 때마침 꼭 마음에 드는 말이다(웃음)

▶성기순: 아! 8월에 엄마가 된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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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한국민화협회 수본민화연구원 회원들과 함께 한 제시카

민화는 창작 민화도 있지만 시작은 대개 임화(보고 그리는 그림)로 한다. 또한 채색은 프린트 되어 있는 밑그림에 바로 시작할 수 있어서 누구나 쉽게 민화에 입문할 수 있다는 것이 성기순 원장의 설명이다.

성원장의 ‘호’이기도 한 ‘수본민화연구원’에는 40여명의 학생들이 있다. 5세부터 70세까지, 학생과 주부 등 제자 층도 다양하다.

이화여자대학교 미대에서 섬유예술을 전공한 성기순 원장은 1982년 민화의 세계에 발을 들어 놓았다. 성원장은 처음 민화를 접했을 때의 충격을 아직도 잊을 수다 없다고 한다.

“미국에서 가정주부로만 수해를 지내오다 어느 해 LA에서 열린 민화전시회에 우연히 들렀다. 그곳에서 경복궁 ‘일월오봉도’ 원본을 보았다. 그 독특한 모습과 충격적일 정도로 강렬한 색채… 첫 눈에 반했고 오로지 민화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성원장은 전통민화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갔고 그곳에서 한국 민화의 대가라 불리는 파인 송규태 작가를 만나 직접 민화를 전수받았다. 이후 6년 동안 성기순원장은 송규태작가를 미국에 초대해 가면서 민화를 사사 받았고 2000년 미주 한인민화협회를 만들어 직접 민화보급에 앞장 서 오고 있다. 또한 지난 2006년부터 2년마다 송규태 작가를 초청, 민화협회와 함께 작품 전시회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8월 22일부터 전시회가 열릴 계획이다.

아기방에 걸어주겠다며 열심히 모란꽃에 색을 입히고 있는 제시카. 붉은 모란보다는 좋아하는 보라색을 택했다.

▶제시카: 민화는 종이도 그렇고 물감의 느낌도 많이 다르다

▶성기순: 민화는 닥나무 껍질로 만든 닥지에 그리고 물감은 대게 자연에서 얻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 흰색은 조개껍질를 구워 파우더로 만들고 노란색은 나무 진으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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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쁘고 탐스러운 모란꽃이 완성됐다.

초보 화공 제시카 주변으로 주부 학생들이 모여들어 저마다 한마디씩 거든다.

“모란은 부귀와 영화를 상징한다. 부자 되겠네!”

“조선시대에는 왕비방에 모란꽃 병풍을 놓았다는데… “

“아기가 커서 퍼스트레이디가 되려나 보다. 근데 아들이야 딸이야?”

더워도 갓끈을 풀지 않고 바빠도 뛰지 않던 양반님네들과 달리 솔직하고 대담하게 삶을 풀어놓았던 서민들의 그림. 민화의 매력에 제시카는 한동안 빠져 있을 듯하다.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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