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부부가 사는 법]한인전문직 1세대 김익창박사-그레이스 김..

[이 부부가 사는 법]

김익창-그레이스 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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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인, 친구, 동지로 53년을 한결같이 살았어요”
김익창 박사가 머물고 있는 케어센터에서 그레이그 심 여사가 부군과 다정히 포즈를 취하고 있다.옷 색깔까지 맞추었다.

애나하임의 한 노인병원. 불편한 몸을 움직여 캔디와 과자 바구니를 챙기는 노신사가 있다. 보라색 셔츠가 잘 어울리는 그는 지난 5월 이곳에 온 이후 매일 같이 아내를 기다린다. 그 옛날 데이트하던 때와 꼭 같다. 아내는 매일같이 남편을 보러 온다. 오늘은 어쩌면 약속이나 한 듯 보라색 블라우스 차림이다.

두 사람의 얼굴에 꼭 닮은 미소가 번진다. 53년을 마주했던 얼굴이지만 요즘은 하루하루가 더 새롭다.

너무나 평화롭고 소소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노부부. 바로 미주 한인 지식인들의 멘토라 불렸던 김익창(84), 그레이스김(83)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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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뉴욕에서 신혼여행 중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포즈를 취한 김익창 박사 부부.

친구에서 연인, 다시 동지로

정신과 전문의로 데이비스 캘리포니아(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서 35년 간 교수로 근무하던 김익창박사와 미국 고등학교에서 25년 간 교사로 근무한 그레이스 김 여사는 한인 전문직 1세대 부부다. 얼마든지 주류사회에서 풍요롭고 안락한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부부는 평생을 한인을 비롯한 아시안 이민자들의 대변인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6.25를 눈앞에서 겪은 세대다. 모두가 못 배우고 가난한 시절에 그래도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지. 우리 부부는 그저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생각이 같으니 같이 살기 쉬웠다. 52년을 동지같이(웃음)”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6.25 피난민 시절, 부산 기독학생 협동회관에서였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 서울대학교 캠퍼스에서 운명처럼 재회했다.

당시 그레이스 김(한국명 전상옥)씨는 캠퍼스 내 모든 남학생들이 데이트 신청을 해 올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하지만 별명이 ‘NO’였을 정도로 콧대 높은 여대생이었다.

옛날 이야기가 나오자 김익창 박사가 대화에 참여한다. 파킨슨 투병중인 그는 목소리를 내기 힘겹지만 아내 이야기라면 무조건 즐겁다.

“내가 첫 눈에 반했다. 참 예뻤다.… 다 데이트 하고 싶어 했는데 나하고만 했다(웃음)”

1956년 캠퍼스 커플은 김박사의 미국 유학으로 잠시 이별을 했다. 전화도 어려웠던 시절, 6년을 오직 ‘연애편지’로만 소식을 주고 받았다.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레지던트 생활을 하던 1962년 마침내 미국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교사가 되고 싶었던 아내. 남편은 아내가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남편은 누구나 동등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남편과 아내, 여자와 남자, 백인과 흑인 모두가 말이다. 또한 아내가 재능이 있다면 남편은 당연히 도와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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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킨슨씨 병으로 투병중인 남편 김익창 박사를 헌신적으로 간호하고 있는 그레이스 김 여사

부부는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김익창 박사는 정신과 의사로서 평생 소수민족의 정신의학에 관심을 두었다.

‘문화가 다른 환자들에 대한 의료진들의 이해’를 강조하며 대학에 강좌를 만들고 끊임없이 논문을 발표했다. 그의 노력으로 현재 미국 정신의학협회에는 ‘화병’이 정식 병명으로 등록되어 있다. 그레이스 김씨는 언어와 문화 차이로 어려움을 겪은 한인 학부모들과 학교를 잇는 가교역할을 담당했다. 새크라멘토 한인회장직을 맡기도 했던 그는 늘 커뮤니티 활동을 더 큰 업으로 삼았다.

또한 이들 부부는 은퇴 후에는 실버 타운에 작은 거처를 마련하고 나머지 재산을 모두 사회에 환원했다.

“노인들이 무슨 돈이 필요하나. 두 아들도 흔쾌히 따라주었다. 교회와 비영리단체 등에 기부하고 25만 달러를 남편이 평생 몸담았던 UC데이비스 의과대학에 기부했다”

‘김여사의 해피에너지’는 실버타운에서도 빛을 발했다. ‘실비치 레서타운’에 살고 있는 한인 노인들을 위해 각종 세미나와 교양 프로그램들을 속속 만들어 내는가 하면 타운 내 타 커뮤니티와도 결속을 다지며 ‘다문화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도 만들었다.

10년 전 김익창 박사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부부에게는 예상치 못한 슬픔이 찾아왔지만 이 또한 차분하게 받아들였다. 오히려 김박사는 자서전을 집필하기 시작했고 2010년 그의 자서전 ‘사선을 넘어서’가 출간됐다.

이후 병세가 악화된 그는 지난 5월부터 보호시설에서 지내고 있다. 매일 아침 찾아와 해피에너지를 전해주는 아내는 세상 둘도 없는 친구다.

금혼식을 넘어 53년 차를 맞은 노부부는 이렇게 조언한다.

“부부는 동등한 인격체임을 명심하라. 또한 파운데이션이 같아야 한다. 종교든 신념이든 같은 인생관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사공이 둘이면 배는 산으로 가지 않나. 같은 목적지를 가지고 저어야지…”

하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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